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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인 역사의 뿌리였던 '사진 신부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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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3면

지금부터 1백년전, 일제에 강점당한 나라를 뒤로 하고 꿈을 찾아 하와이로 간 여인네들이 있다. 그들이 손에 쥔 것은 남편될 사람의 사진 한장 뿐. 그래서 그네들은 '사진 신부(사진)'라고 불리었다.

이들은 이민 이후의 곤궁하고 척박한 생활 속에서도 나라의 독립과 자녀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그들이 뿌린 거름은 후대의 삶에 튼실한 토양이 됐다.

20일 방송하는 SBS 미국 이민 1백년 특별기획 '픽처 브라이드(Picture Bride)-하와이로 간 사진신부들(낮 12시 10분)'은 그녀들의 생애에 대한 조명이다. 사진 신부들의 드라마같은 인생을 통해 미국 이민 1백년사를 정리해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중매쟁이가 건넨 사진을 들고 머나먼 땅 하와이로 떠난 나이 어린 조선 처녀들. 이들은 "하와이에 가면 나무에 돈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는 얘기에 친정 식구들을 도우려고, 좋은 교육을 받아 애국하고 싶어서, 일본의 압박이 싫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사진 신부라는 인생을 택했다.

1903년 1월 13일 첫 공식 한인 이민자들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하와이 땅에 첫발을 내디딘 후 1910년부터 24년까지 15년간 약 5백여 명의 사진 신부들이 하와이로 시집을 갔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사진에서 본 젊은 남자가 아닌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늙은 한인 노동자와 고된 노동 뿐이었다. 대부분의 사진 신부들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지만 나이 많은 남편과의 갈등, 나라 잃은 설움 등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하와이 초기 이민사는 여성들이 만들어낸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의 집 자녀가 학교를 다닌다고 하면 돈을 모아 장학금을 마련해주고, 독립운동 자금을 위해 온갖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한인들의 교육 활동과 독립운동은 놀랄 만큼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여성들이 있었다.

제작진은 이 위대한 이민 1백년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미국의 한 프로덕션이 10년 전 촬영한 이민 1세 사진 신부 할머니들의 생존 당시 인터뷰를 최초로 공개한다.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남편과의 첫날밤 에피소드, 술주정뱅이 남편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 아이들을 남겨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 때문에 재혼·삼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각종 방법 등을 들어본다.

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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