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정일-고이즈미 정상회담] 日국민, 피랍자 사망 많자 분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일본 여론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북·일 정상회담이 안보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는 국제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본 여론은 의외로 냉담하다. 피랍 사망자가 예상외로 많은 탓이다.

이 때문에 보수파를 중심으로 대북 강경론이 고개를 들고 있어 다음달 재개되는 수교교섭에 적잖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들끓는 일본열도=18일자 일본 신문들은 한결같이 피랍자 사망을 1면 톱으로 다뤘다. 핵·미사일 등 굵직한 이슈는 뒷전이다.

납치를 '국가범죄''테러'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논조가 대부분이다.

이에 앞서 NHK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명 장면을 녹화로 내보내는 대신 오열하는 피해자 가족들의 회견을 생방송했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관심은 납치문제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더구나 피랍자 2명이 추가로 확인되자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일본인이 납북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또 증거인멸을 위한 '살해설'까지 나오고 있다.

자민당은 이같은 대북 강경여론이 10월 말의 보궐선거에 악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야후 재팬과 교도통신이 17∼18일에 걸쳐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는 주로 젊은층으로 추정되는 응답자 7천16명 중 65%인 4천6백7명이 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한다고 답변했다.

◇욕심내는 일본, 지켜보는 미국=10월 중 재개되는 수교교섭은 종전의 대사급에서 각료급으로 격상될 것으로 보인다. 협상에 무게와 속도를 주기 위해서다.

일본은 수교교섭과는 별도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6자 회담'에 욕심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문제에 외교적 리더십을 확보하자는 의도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남북한은 물론 미국도 아직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은 수교교섭을 일단 지켜본다는 자세다. 다만 수교 단계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일본에 여러 주문을 해올 것이 확실하다. 형식적으론 미·일 공조지만 실제론 대일 '밀착 마크'인 셈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 및 북·일 수교를 통해 자천타천으로 노벨평화상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연내 수교는 안개속=양국은 '평양선언'을 통해 정상간에 큰 틀을 정리한 뒤 실무교섭을 신속히 진행시키도록 어느 정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진다는 북한의 타산과도 맞아떨어진다.

도쿄(東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당초 양국 실무자들은 정상회담 후 수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신속히 수교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납치문제로 일본 여론이 의외로 강경하게 돌아서는 바람에 이 계획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납치자 가족은 보상을, 이들을 지원하는 의원들은 대북 경제제재를 요구하고 나섰고 여론에 민감한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어떻게든 이를 협상에 반영해야 할 입장에 몰렸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yhn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