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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자! 한국 여성' 주목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9월 6일자 1면부터 시작해 3회가 진행된 중앙일보의 기획기사 '뛰자! 한국 여성'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마침 필자가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원고도 '한국 사회-여성이 먼저 변해야 한다'여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원고를 출판하려 했으나 출판사는 '여성들의 반발을 부를 우려가 있다'면서 보류했다. 이번 중앙일보의 기획기사에 관한 독자들의 반응을 담은 취재일기(12일자 5면)를 읽고서야 출판사가 뭘 염려했는지 잘 알게 됐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의 한 사람으로, 필자도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또 여성들의 반감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여성들이 피해의식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도가 낮고 그 잉여 에너지가 또 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 여성들의 잉여 에너지 문제는 교육 등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과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앙일보의 기획기사는 주제 선정이나 논제가 지극히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이 기획기사에 대해 '현실을 왜곡하고 여자를 폄하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요즘 신세대들 용어로 '오버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대다수의 직장 여성들이 자아실현만을 위해서 회사를 다니는 것은 아니다. 하루 하루 힘들게 일한다. 특히 가정이 있는 직장여성이라면 주부와 직장인이라는 두가지 역할이 간단치 않다고 여길 것이다. 필자도 아이가 어렸을 때 가정과 직장생활을 양립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토요일에 부모는 출근하라면서 도대체 유치원은 왜 문을 닫는지, 치과나 병원은 왜 근무시간과 겹치게만 문을 여는지 투덜대며 사회에 대해 화를 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국내외 선배 직장여성들이 쓴 책들을 성경책처럼 끼고 살았다. 책속에서 찾아낸 구절,'일과 가정을 동시에 지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었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나는 다시 태어나도 내 일을 지킬 것이다''포기하지 마세요. 젊었을 때는 그대가 일을 지켜야 하지만 나이가 들면 일이 그대를 지켜줍니다'라는 말을 책상 위에 적어놓고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이나 역할을 무시한 채 사회활동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다만 아이가 어려서 지금 당장 활동을 하기 어려운 여성이라도 세상의 변화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일'이란 개개인에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주는 가치가 있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보답을 주는지, 사회 지향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지는 부가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남녀 모두 사회생활에 무슨 독특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위해 가장 필요한 요건은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는 절실함이나 근성이다. 많은 기업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바꾼 능력 덕에 치열한 경쟁에서 사라지지 않고 버티고 있음을 참고했으면 좋겠다.

사회·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만 논하거나 무작정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이번 기획기사를 읽으며 여성들이 진정한 반성의 계기로 삼길 기대한다. 사회에 대해 지나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쉽게 포기하려는 습성을 갖고 있지 않은지, 힘들 때면 남자·자식 뒤에 숨거나 가정에 안주하려는 속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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