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疾走본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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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계는 없다 ! (No Limit!)"

미국의 스프린터(단거리 육상선수) 팀 몽고메리(27)가 지난 15일 1백m 세계기록을 세운 직후 기자회견에서 토한 사자후(獅子吼)다.

1백m 달리기에서 인간이 넘을 수 없는 '마(魔)의 벽(壁)'은 10초라는 가설이 만들어진 것은 전설적인 육상영웅 제시 오언스 탓이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오언스는 1백·2백·4백m를 모두 휩쓸었는데, 당시 1백m 기록이 10.2초다. 10.0초는 전설을 넘어서는 벽으로 설정됐다.

마의 벽이 깨진 것은 그로부터 32년 뒤인 68년. 미국 육상선수권대회에서 지미 하인즈 등 흑인 3명이 동시에 9.9초를 기록했다. 심판들은 "트랙이 짧았을 것"이라며 정밀조사를 벌였다. 트랙은 정확히 1백m10㎝. 마의 벽은 9.9초로 수정됐다.

다시 23년이 지난 91년, 그 벽마저 깨졌다.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칼 루이스가 9.86초를 기록했다. 다시 마의 벽은 9.8초로 당겨졌다. 그 벽은 불과 8년 만에 깨졌다. 99년 미국의 모리스 그린이 9.79초를 기록했다. 모리스 그린은 몽고메리와 4백m 계주를 함께 달리는 팀 동료다. 바로 그 모리스가 몽고메리에겐 '마의 벽'이었다.

"눈을 감았을 때마다 앞서가면서 뒤돌아 나를 쳐다보는 모리스의 얼굴이 보였다."

몽고메리가 승자가 되고나서 비로소 털어놓은 강박관념이다. 그린 때문에 몽고메리는 늘 '세계에서 둘째로 빠른 남자'에 만족해야 했다. 몽고메리는 그린에 비해 턱없이 적은 출전료(Appearance Fee·우승과 무관하게 대회에 참가하면 주는 돈)에 자존심이 상해 몇몇 대회 출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코치를 만나 기량이 향상된 몽고메리는 일찌감치 "올해엔 아무도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룰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 물론 운도 따랐다. 출발반응시간 0.104초는 부정출발판정 기준(0.100초)을 간발로 넘었고, 바람도 기록무효 한계(초속 2m)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며 몽고메리의 등을 밀었다.

부상과 피로로 경기를 포기한 채 지켜본 그린의 촌평도 걸작이다. "다음 시즌은 더 재미있을 겁니다." 질주(疾走)본능은 무한하고, 도전은 계속된다.

오병상 대중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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