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변신, 고이즈미의 성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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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제 평양에서 열린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사건과 관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은 가위 충격적이다. 그동안 북한 당국이 일관되게 부인해 왔던 일본인 납치 사건을 金위원장이 인정하고 나아가 공식 사과까지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북·일 회담에 임했던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물론 북한이 이렇게까지 나온 데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자세가 여전히 적대적인 데다 새로운 조치 등을 통해 경제 운용 방식을 개편해 보려는 북측의 몸부림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결과라고 하겠다. 그러나 과거 북한의 행태와 달리 최고 지도자가 직접 나서 해명·사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북한의 최근 변화 노력에 긍정적 평가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더욱이 곧 재개될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과 북측의 미사일 발사유예 지속 의사 표명에 힘입어 북·미 대화도 비교적 부담없이 재개될 가능성을 열었다. 이런 일련의 교섭을 통해 북한이 국제 사회 편입을 서두르고 개방의 속도를 높인다면 우리로선 한반도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것이란 점에서 크게 반길 일이다.

우리는 북·일 정상회담의 가시적 성과를 통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음을 확인한다.일본 측 역시 이번 회담에서 DJ 햇볕정책의 기여를 인정하고 있다. 이제 공은 일본에 넘어갔다. 북한의 통 큰 양보에 상응하는 대가를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채울 것인지는 고이즈미 정부의 과제로 남게 됐다. 또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세우던 미국 정부 역시 대북 포용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金위원장의 말처럼 '특수기관의 영웅주의·망동주의'가 또다시 설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때 비로소 북한은 국제 사회의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급변하는 북한을 상대하며 한반도 주변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갈 우리 정부의 외교에도 긴장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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