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긁었잖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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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신용카드는 현금을 일일이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덜어줍니다. 그러나 카드의 편리함 뒤에는 충동구매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소득 수준이나 지불 능력을 뛰어넘는 카드 긁기가 잦아지면 '돌려막기'의 악순환에 빠지고 급기야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신용카드로 인한 신용불량 등록 건수는 76만1천여건으로 한달 새 13.9%(9만3천건)나 늘어났답니다.

국민은행연구소가 얼마 전 발표한 소비·금융행태 조사 결과는 다시금 곱씹어볼 만합니다. 20대 직장인과 대학생 1천명을 조사했더니 '1일 최고 카드 사용액의 평균'이 84만4천원으로 월 평균 소득의 61.9%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아찔한 수준입니다.

소비자 신용교육을 강조하는 YMCA 시민중계실 서영경 팀장은 "카드에는 과소비를 유발하는 속성이 본질적으로 숨어 있다"고 말합니다. 카드를 통한 신용구매는 공짜가 아니라 '미래의 소득을 앞당겨 쓰는 것일 뿐'이란 인식을 분명히 해야 과다한 카드 사용의 덫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최현자 교수는 "연구 결과 신용(빚)한도를 가처분 소득의 25% 이하로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합니다. 만약 25%를 넘을 경우 저축이 어려워져 결국 미래의 꿈을 카드사에 저당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YMCA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들은 대부분 30% 이상을 넘기고 있다고 합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후불식 카드보다는 예금 범위 안에서 지불되는 직불카드를 활용하면 그나마 충동적인 카드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쇼핑 갈 때 구매 목록을 미리 작성해 가는 것도 고전적이긴 하지만 좋은 방법입니다. '카드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카드를 신청할 때 신용구매 한도를 낮게 신청하거나, 현금서비스 기능을 아예 빼버리는 것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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