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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기업 “예정대로 투자 진행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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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정말 대기업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건가, 아니면 오해인가.

정부는 대기업들이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고,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집행 중이라고 억울해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대기업 현금 보유량이 많다. 투자를 안 하니까 서민들이 힘들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의 투자 현황은 사뭇 다르다. 30대 그룹은 올 초 시설투자와 연구개발(R&D) 투자 등에 모두 8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16.3% 늘어난 것이다. 대기업들은 그후에도 앞다퉈 투자 규모를 더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와 대기업, 양쪽의 인식 차이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 우선 대규모 투자의 계획에서 집행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시차 효과’가 있다. 원자재 값 등 글로벌 경영 환경의 급박한 변화 때문에 예정했던 투자가 수정되는 경우도 일어난다. 까다로워진 공시 규정 때문에 대기업들이 투자 실적을 실시간으로 공표하지 못하는 것이 불신을 자초하기도 한다.

본지가 매출 기준 10대 기업(공기업·상사·외국계 제외)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들은 당초 예정대로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 등이 올 상반기에 연간 투자계획의 절반 이상을 집행한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는 당초 18조4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잡았다가 반도체 15, 16라인 신·증설과 액정표시장치(LCD) 신규 라인 건설 등에 투자를 늘려 총 투자 규모를 26조원으로 확대했다. 지난해보다 65% 늘어난 규모다. 회사 관계자는 “예정했던 올해 투자의 절반 이상을 상반기에 이행했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4조원)보다 38% 많은 5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상반기에 파주 8세대 라인 증설 등을 비롯해 시설투자에 2조2130억원을 투입했고, R&D 투자를 합치면 올해 계획의 절반을 넘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올해 투자 규모를 지난해(4조9000억원)의 두 배인 10조4000억원으로 잡았다. 상반기 투자액은 3조원이었다. 포스코 관계자는 “광양 후판공장 준공, 포항 4고로 개수 등 하반기에 투자를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SK에너지의 올해 투자 계획은 지난해(1조2000억원)보다 줄어든 1조원이다. 회사 관계자는 “2008년 석유화학 설비 신·증설에 대규모 투자를 해 올해는 예년 수준의 투자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7200억원의 투자를 계획 중이다. 지난해(1조1700억원)보다 줄었다. 상반기에 군산 조선소와 풍력발전기 공장을 준공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조선업 시황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과감하게 투자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상반기에 약 6600억원을 투자했다”면서 “하반기에 전기차 배터리와 LCD용 유리기판 공장 투자가 집중되면 올해는 지난해보다 32% 증가한 1조4000억원을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충분한가=상당수 대기업의 투자 규모는 회사 내부에 쌓아둔 현금성 자산(예·적금, 채권 등)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올해 투자 규모 26조원은 1분기 기준 이 회사 현금성 자산 11조3855억원의 2.3배에 달한다. 현금성 자산 6조1826억원을 보유한 포스코는 올해 10조원 이상의 투자를 계획 중이다. 올해 3조2000억원의 투자를 진행 중인 KT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8964억원에 불과하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찬영 수석연구원은 “정보기술(IT) 기업의 경우 애플·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기업보다 결코 현금을 많이 쌓아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다만 IT는 업종 자체의 변동성이 굉장히 심하기 때문에 수익이 났다고 바로 투자하기 어려워 내부 유보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돈놀이를 하려고 돈을 쌓아놓은 기업은 없다”면서 “기업들이 돈 되는 곳을 찾아 투자하려다 보니 정부와 입장 차이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대기업의 인식 차이가 나는 원인에는 ‘해외투자 변수’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해외 투자에 비해 정체되는 바람에 투자가 늘어도 혜택이 서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해외 직접투자 금액은 2001년 25조8000억원에서 2009년 147조5000억원으로 확 늘었다.

◆“투자 여건 만들어야”=전문가들은 정부가 대기업의 투자를 압박하기보다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신규 투자가 원활하지 않은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라면서 “기업의 투자를 바란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전망이 서도록 정부가 신규 산업을 발굴하는 데 힘쓰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 발전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해외 다국적기업에도 납품할 수 있도록 해외 마케팅과 R&D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상렬·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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