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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세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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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금이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잘나가는 정치경제학자 니알 퍼거슨(옥스퍼드대)교수의 주장이다. 성모 마리아와 요셉은 당시 로마황제가 제국의 모든 신민들에게 세금을 물릴 목적으로 실시한 호구조사에 응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가다가 성탄을 맞게 됐다는 얘기다. (누가복음 2장)

비단 예수탄생이 아니라도 세금은 인류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왕조의 성쇠(盛衰)는 세금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백성의 입장에서 선정(善政)이란 다름아닌 공평하면서도 가벼운 세금 거두기였다. 탐관오리나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성행하면 민란이 일어났고, 왕조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퍼거슨 교수는 이같은 세금의 정치적 측면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하고 있다. 적당히 거둬야지, 도가 지나치면 나라가 거덜난다는 뜻이다.

최근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재산세를 보자. 지금처럼 건물주인에게 부과되는 재산세는 구한말인 1909년에 가옥세로 도입됐다. 국세청 조사국장과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을 거친 세제전문가인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재산세를 '아주머니 세금'이라고 부른다. 소득세나 양도세와 달리 재산세는 액수가 그리 크지 않아 주부들이 전화나 수도요금 내듯 공과금으로 내왔다는 얘기다. 시가 5억5천만원인 서울 강남지역 31평 아파트의 재산세가 4만2천원이라는 보도가 좋은 예다.

재산세의 딜레마는 바로 '아주머니'들에게 있다. 콩나물 값도 깎으려는 주부들이 내 온 세금이라는 현실과 재산세를 왕창 올려서 뛰는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명분이 부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세이론에서 재산세는 소득세를 보완하는 세금으로 분류된다. 집 살 돈을 버는 과정에서 이미 소득세를 낸 만큼 재산세는 소득세의 구멍을 메우는 정도로만 거둬야 이중과세를 막는다는 것이다.

투기는 꿈도 못꾼 채 겨우 아파트 한채 장만한 주부들은 부동산 거품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단숨에 두배 가량 뛰어오를 재산세에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하물며 행정자치부와 국세청이 사전협의를 게을리해 재산세 인상폭 같은 기본적인 설계조차 틀렸다니. 아주머니들의 조세저항을 무서워하지 않는 '간 큰' 공무원들이 아직도 많은 모양이다.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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