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여성이변해야한국이산다, 3.과잉모성]외면 당하는 인성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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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朴모(38·서울 서초동)씨는 얼마 전 중학교 3학년인 딸에게 "손님이 오셨으니 방을 좀 치우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딸이 "자꾸 스트레스 받게 하면 시험 확 망쳐버릴 거야"라며 큰 소리로 방문을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자녀 교육열이 '성적'에만 집중되다 보니 정작 인성교육, 아이의 장기(長技)를 살려주는 적성교육은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풍토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공동체의 중요성을 아는 제대로 된 인격체로 자라날지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중앙일보가 8월 중 6대 도시 여성 7백38명(기혼여성 5백78명)을 상대로 전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자녀가 학교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성적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성적을 고치겠다'고 답한 엄마들은 24%에 그쳤다. 金모(36·서울 목동)씨는 "아이가 잘못했더라도 점수를 고치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 잠원동의 한 중학교 1학년 교실. 아이들은 아침에는 학교 숙제 베끼느라, 수업시간에는 학원 숙제 하느라 바쁘다. 이 반에서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단 두명 뿐이다. 학급의 절반 정도는 명문 고교로 진학하기 위해 위장 전입을 한 아이들이다.

"버릇 없고 못된 애들이 많아요. 선생님 앞에서 욕을 내뱉기도 하죠.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가 봐요. 학원도 짜증나지만 다들 낸 돈이 아까워 참는대요." 이 반 학생 장모(13)양의 설명이다.

서울 C중학교 교사 유모(27·여)씨는 "가정에서 인성 교육에 소홀한 데다 돈으로 자식교육을 해결하다 보니 아이들도 성적이나 돈 말고 다른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본지 조사 결과 '남편에게 사교육비가 모자란다고 불만을 털어놓은 일이 전혀 없다'는 엄마는 17%에 불과했다. 남편이 정규 수입 외에 출처가 불확실한 한두 달치 생활비를 가져다 주면 무조건 받거나(24%), 납득할 만하면 받는다(65%)는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남의 아이들이 잘 돼야 내 아이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아야 한다"며 "엄마의 생각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건강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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