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접대비용 확 낮춰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우리나라 기업들엔 아직도 접대가 중요한 영업수단이다. 비즈니스의 윤활유로 삼고 있는 선진국과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한번에 수백만원씩 드는 룸살롱·골프 접대에 매달리고 있으며, 때마다 수십만원 이상 뇌물성 선물을 '상납'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나치게 향락 위주인 우리의 접대문화를 투명하고 다양하게 바꿔 접대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과잉 접대가 많은 데다 뒷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어 우리 사회의 부패를 조장한다는 지적이다.

기업이 과다한 접대비를 조달하려면 ▶물품 가격을 실제보다 높이는 매입비 과다계상▶구입하지 않았는데도 산 것으로 꾸미는 가공매입▶고용하지 않은 사람을 쓴 것처럼 속이는 인건비 과다계상 등의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밀실에서 이뤄지는 기업의 거래관행은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깎아먹는다. 또 사업상 접대를 빙자해 회사 돈으로 개인적인 향락을 즐기는 '도덕적 해이'도 많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확한 접대비 통계는 없다. 그러나 법인세 신고내용에 따른 국내 기업의 접대비는 2000년 2조9천8백억원으로 1999년 2조6천9백억원에 비해 크게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체들은 경상이익이 73% 줄었는 데도 접대비 지출은 오히려 4% 늘렸다.

그러나 공인회계사 李모(45)씨는 "국내 기업의 회계 관행을 보면 숨어 있는 접대비가 두배는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줄잡아 한해 10조원에 가까운 돈이 접대비로 쓰이고 있다는 계산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접대 한도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철저히 지키고 있다. 보통 1인당 20~50달러짜리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도 20~30달러짜리 기념품 정도다. 미국 공무원들은 20달러를 넘어서는 식사접대나 선물을 받을 수 없다. 어겼다가는 가차없이 감봉 등 징계를 받는다.

스포츠·공연 관람과 각종 레포츠 등 상대의 취향에 맞춘 다채로운 접대가 밀실 아닌 열린 공간에서 이뤄지는 것도 흥청망청식 우리 접대문화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접대는 어디까지나 사업을 논의하는 생산적인 자리가 된 지 오래다.

우리가 하루 빨리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접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밀실·과잉 접대가 기업의 투명성과 생산성에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기업이건 공직사회건 실효성있는 내부 윤리규정을 마련해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기업의 접대문화는 실력·경쟁력보다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적 상거래 관행의 산물인 것 같다"며 "접대비를 많이 쓰는 기업은 결국 생산성이 떨어져 경쟁력이 약화된다"고 말했다.

조세연구원 손원익 박사는 "과잉접대는 부조리로 연결돼 자유경쟁시장을 왜곡한다"며 "기업은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정부는 각종 행정규제를 완화해 접대 수요를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훈·박현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