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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묵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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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죄수들의 탈옥을 막는 기발한 방법이 있다. 수의(囚衣)의 한쪽 소매 길이를 짧게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햇볕에 노출된 그쪽 팔만 피부색이 짙게 변하게 된다. ‘두 팔뚝의 피부색이 다른 사람=죄수’로 누구나 쉽게 알아보니 감히 탈출을 꿈꾸지 못한다는 거다. 소수의 감시자가 다수의 수용자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감옥, 이른바 ‘파놉티콘(Panopticon)’의 운영 방안으로 영국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시했던 아이디어다.

죄인의 신체를 남들 눈에 띄게 변형시켜 범죄 재발을 예방한다는 점에서 ‘묵형(墨刑)’과도 일면 상통한다. 피부에 바늘로 죄명을 새긴 뒤 염료로 물들이는 형벌 얘기다. 화제의 TV 드라마 ‘추노’에서 도망갔다 잡힌 남녀 노비의 얼굴에 노(奴)자와 비(婢)자를 새겨 넣은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경형(黥刑) 또는 자자형(刺字刑)이라고도 불린 이 벌은 원래 고대 중국의 오형(五刑) 중 하나였다. 중국에 복속됐던 거란족의 경우 도둑질하다 붙잡히면 초범은 손목, 재범은 팔뚝, 3범은 팔꿈치, 4범은 어깨에 적(賊)자를 새기는 벌을 내리고 5범째엔 목을 잘랐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에도 도입됐으나 평생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따돌림 당하게 만드는 가혹한 처벌이란 이유로 영조 때 완전히 폐지됐다고 한다.

26일 인터넷에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들의 사진과 이름·주소지 등을 공개하는 사이트(www.sexoffender.go.kr)가 개설됐다. 몸에다 특별한 표지를 남기진 않아도 사회 전체가 이들의 범죄 사실을 알고 감시하게 한다는 차원에서 ‘현대판 묵형’과 다름없다. 묵형의 흉터는 요즘엔 레이저로 깨끗이 지울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에 뜬 신상 정보는 죽는 날까지 성범죄자들을 따라다니는 ‘주홍글씨’ 노릇을 할 게다. 맘만 먹으면 끊고 도망갈 수 있는 전자발찌, 돈 많이 들고 번거로운 화학적 거세보다 효율성이 커 보인다.

물론 인권 침해가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짐승만도 못한 성범죄자들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게 훨씬 중하단 목소리가 더 높다. 혹여 범죄자 인권 보호가 영조 때보다도 후퇴했단 착각은 마시라. 묵형은 주로 절도범이 대상이었지 조선 시대에 성폭행범, 특히 12세 이하 어린이에 대한 강간범은 무조건 사형에 처했다니 말이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