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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경기 동부지역:조선 500년 역사의 '보물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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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한 반도의 중심부를 흐르며 북한강과 합쳐져 겨레의 물줄기 한강을 이루는 남한강. 때론 춤추듯 일렁이고 혹은 절규하듯 서해로 치달으며 조선 5백년의 역사를 함께 해온 강이다. 남한강 하류 일대인 경기도 동부 지역에는 다산 정약용 생가·세종대왕릉·명성황후 생가 등 조선시대 역사를 더듬을 수 있는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특히 이천과 여주· 광주는 조선시대 도공들의 장인정신이 면면히 전해오는 도자기의 고장이다.

비수도권 거주자들을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경기 동부 지역을 둘러볼 수 있는 여행 코스를 추천한다. 중부 고속도로 경안 나들목을 빠져나와 이들 지역을 돌아본 뒤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나들목을 이용해 귀갓길을 잡으면 된다. 남양주와 양평(1일차), 여주(2일차), 이천(3일차)을 순서대로 거치도록 꾸며봤다.

#1. 나무에 벼슬 주는 낭만, 다시 볼 수 있다면.

흔히 다산 정약용 (1762~1836)선생 하면 전남 강진을 떠올린다. 다산이 40세 때부터 17년간 그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적극적인 저술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산이 태어났고 유배 뒤 귀향해 18년간 생활하다 숨진 곳은 경기도 남양주다. 이곳에 다산 정약용 유적지(031-576-4102·조안면 능내리)가 있다. 생가인 여유당(與猶堂)·기념관·문화관·묘역 등이 꾸며져 있다. 얼핏 볼거리가 적은 듯 싶지만 이곳에서 배울 것은 매우 많다. 지난 5월부터 매일 2~3명의 문화유산 해설사가 상시 대기해 여행자들에게 친절하게 다산의 인생·철학을 들려준다.

다산 유적지에서 남한강 물줄기를 거슬러 달려 양평으로 넘어가면 국내 최대의 은행나무가 있는 용문사(龍門寺·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이정표를 만난다.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은행나무는 수령 1천1백년의 암나무로 높이 41m, 둘레 14m에 달한다. 여러 차례의 전란에도 불타지 않고 오랜 세월 살아남은 나무라고 해서 조선 세종 때 당상(堂上:정3품 이상의 벼슬)임을 통고하는 직첩(職牒:임명장)을 하사받기도 했다. 나무는 조선 고종이 승하했을 때 큰 가지 하나를 떨어뜨리는 등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 겪었다 한다.

#2. 남한강 지나던 나룻배들은 어디로 갔을까.

둘째날 방문지인 경기 여주에는 세종대왕릉, 명성황후 생가,목아 불교박물관, 신륵사 등 둘러볼 곳이 많다.

용문사 은행나무에 벼슬을 내린 세종대왕은 양평과 맞닿은 여주에 잠들어 있다. 왕릉인 영릉(英陵·능서면 왕대리·031-885-3123)내에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세종전)이 마련돼 있다. 세종전 입구에서 한글이 199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지정됐던 사실을 되새길 수 있다. 영릉 인근에는 병자호란 뒤 8년간 청나라에서 인질 생활의 비운을 맛본 뒤 귀국해 북벌을 꿈꿨던 효종 임금의 능이 있다.

나라가 힘을 잃으면 뼈 아픈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는 법. 남한강은 국모(國母)가 시해되고 제 나라 글도 쓸 수 없는 근대사의 고통을 목격해야 했다.

일본인 낭인들에게 시해된 명성황후의 생가·기념관(여주읍 능현리·031-880-1881)이 세종대왕릉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생가는 1687년에 세워진 집으로 당시 건물 중 안채가 남아 있다. 명성황후는 이곳에서 태어나 8세 때까지 생활하다가 아버지가 벼슬을 얻으면서 서울로 이사했다. 기념관은 첨단 시청각 자료를 통해 명성황후의 일생과 구한말의 역사를 상세히 공부할 수 있는 곳이다.

세종대왕릉과 명성황후 생가를 구경한 뒤 점심께 목아 불교박물관(강천면 이호리·031-885-9952·www.moka.or.kr)을 찾아간다. 무형문화재 목각장이며 불교 목공예가인 박찬수씨가 만든 곳으로 불상·불화 등 불교 관련 공예품 6천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현대적 감각으로 만든 불상들이 눈길을 끌기 때문에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오후 더위가 꺾인 뒤에는 신륵사(여주군 여주읍 천송리)로 가서 도도히 흐르는 남한강을 바라본다. 신륵사는 보기 드물게 강변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신라 진평왕 때 세워졌으나 중건을 거듭해 예스런 맛을 느끼긴 어렵다. 신륵사 앞에는 1964년까지 호포(湖浦) 나루로 불리던 나루터가 있었다. 서울의 마포·광나루,여주의 이포나루와 함께 한강의 4대 나루 중 하나였다. 충북 충주에서 서울까지 수운(水運)이 가능하던 조선시대에는 통행자에게 숙박을 제공하던 보제원(普濟院)이라는 시설도 있었다고 한다.

#3. 도자기의 고장, 흙의 고마움을 되새긴다.

여주와 이천, 그리고 인근의 광주는 조선시대 도자기의 고장으로 유명했으며 현재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천만 해도 도자기 생산 업체가 3백40여개에 이른다. 여주는 생활 자기, 이천은 예술 자기,광주는 왕실 자기를 주로 제작했다는 게 차이점이다.

셋째날은 흙의 향기를 맡으러 이천으로 향한다. 때마침 이천에서는 29일까지 '제16회 이천도자기 축제'(031-635-7976·www.ceramic.or.kr)가 열린다. 설봉공원 엑스포 단지(이천시 관고동)와 사기막골 도예촌(이천시 사음동) 일원에서 도자기 제작 및 관람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엑스포 단지 내의 세계도자센터(www.worldceramic.or.kr·031-631-6507)는 지난해 세계 도자기 엑스포 이후 세워진 곳으로 세계 각국의 다양한 도자기를 구경할 수 있다.

축제 기간 이외에는 세계도자센터 내 도예공방에서 도자기를 빚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참가비는 1인당 1만원이며 나중에 도자기를 구워 집으로 배달해준다.

사기막골 도예촌에선 여행 기념품이 될 만한 도자기 소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며 도자기 장인들이 흙을 다루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작품을 사지 않더라도 도자기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뜨거운 차를 얻어마시며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곳도 많다. 추천할 만한 곳은 부부가 함께 흙을 다루는 토우도예미술관(031-631-8410)이다.

남한강이 경기 동부 지역을 적시듯 이천·여주·광주 지역에서는 흙에 대한 애정이 흘러 넘친다.

남양주·양평·여주·이천=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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