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SF·팬터지… 젊은 상상력 출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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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응모작 대부분이 습작을 많이 해본 듯 기본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문학은 작가의 사유 체계를 미학적 형식으로 승화시켜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일상의 한계를 치열한 사유와 깊이 있는 문체로 뛰어넘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제3회 중앙신인문학상 예심위원들이 지난 6~7일 이틀간 예심을 본 뒤 전한 올해의 응모 경향이다. 올해 예심은 ▶단편소설 김형경·마르시아스 심·한창훈(이상 소설가)·우찬제·장영우(이상 평론가)▶시 강형철·나희덕(이상 시인)·하응백(평론가)▶문학평론 장영우·하응백씨가 맡았다.

지난 8월 31일 응모를 마감, 현재 본심이 진행 중인 제3회 중앙신인문학상에는 단편소설 1천2편, 규정 대로 5편 이상을 응모한 1천2백57명의 시, 문학평론 42편이 접수됐다. 지난해에 비해 응모 편수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타지(他紙) 신춘문예의 2~3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는 본지가 기존 중앙 신춘문예를 확대·개편해 여름 휴가철과 방학철에 맞춰 차분히 응모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로 해석된다.

단편소설 소재로는 아버지의 실종, 남편 혹은 아내의 가출 등 일상성에 바탕을 둔 것이 여전히 눈에 많이 띄었다.

그러나 그 외피를 뚫고 나아가려는 새로운 인식과 통찰, 파격적 상상력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다. 체험 수기류의 단순한 산문과 달리 소설은 미학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치열한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나아가 주인공의 피동성과 서사성의 결여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젊은 응모자일수록 팬터지·SF·애니메이션적 상상력에 기반한 작품을 응모한 게 두드러졌다. 또 '당신은…이다'식으로 서술하는 2인칭 소설이 10여 편 이상 응모된 것도 올해 응모작의 특징이다.

시부문에서는 서정시에서 현실 참여적 메시지가 강하게 노출된 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응모됐다. 지난 6월 월드컵의 영향인지 월드컵을 소재로 한 시와 민족주의를 내세운 시들이 자주 발견됐으나 형식을 갖춘 시로 승화하지는 못했다.

지난해에 비해 산문시 응모작은 줄었지만 여전히 압축과 율격 등 형식에 대한 모색이 부족해 보였다. 이는 산문을 단순히 행갈이하고 연을 나눈다고 해서 시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인식 부족을 지적하는 것이다. 일정한 수준에 오른 작품의 경우 진솔한 체험보다 작위적 만들기가 눈에 띄는 것도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전체적으로 보아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행복인가' 등 현대인의 정체성을 묻는 응모작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문학을 반성적 사유의 한 방편으로 삼고자 하는 문학적 전통이 유지되고 있어 반가웠다.

전체적으로는 시와 소설에서 응모자의 독서체험 부족 현상을 노출한 것으로 보인다.

문학 작품은 자신과 동시대에 대한 도발적 발언이기도 하지만 앞서 나온 작품을 넘어서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꾸준한 독서야말로 작가적 상상력의 근원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평론 부문은 요즘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분석한 작가론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평론의 특성상 일반인보다 문학전공자의 응모가 많아 작품의 수준을 한눈에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중·고교생에서 28년생 고령자까지 응모자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단편 소설을 2편 이상 응모한 사람이나 시집 한 권 분량인 시 50여편을 응모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무조건 많이 낸다고 좋은 것은 아니며 응모 규정에 맞춰 자신의 작품을 정선해 내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단편소설 10편, 시·평론 각각 20편이 본심 후보작으로 올라갔다. 제3회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은 본지 창간기념호인 19일자에 발표될 예정이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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