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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에 교회대신 유치원 세워 "총 대물림 막는건 신뢰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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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슬람 교도들로 가득찬 도시에서 기독교 포교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팔레스타인 민병대들이 소총을 메고 거리를 활보하는 베들레헴에서다. 한국인 강태윤(姜泰允·44)목사가 그다.

그가 실천하려는 믿음은 '공존'이다. 예수의 가르침 박애(博愛)를 마음에 품으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이 더불어 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렇다고 그가 현실을 보지 못하는 몽상가는 아니다. 그래서 그는 13년 전 베들레헴에 정착해 교회 대신 '조이하우스(즐거운 집)'라는 유치원을 열었다. 공존의 싹을 틔우기 위해서였다.

"저 아이들을 보세요. 지금은 노느라고 정신이 없는 저 아이들이 몇년 후엔 아버지·삼촌 대신 소총을 잡습니다. 감정의 골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아야 해요. 그 연결고리를 끊으려면 아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1995년 이스라엘이 베들레헴을 점령했다 철수한 뒤 팔레스타인 주민들로부터 이스라엘의 간첩이라는 의심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민병대들의 위협을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유혈 충돌에 의한 위험은 더욱 컸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군의 탱크가 밀고 들어오는 곳이 베들레헴인 터라 유치원은 물론 집 건물 벽에도 총탄이 무수히 날아와 박혔다.

지난 3월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 때에는 폭격을 피해 유치원의 골방에서 젖먹이가 딸린 네식구가 몇달 동안이나 웅크리고 지내야 했다. 아이들이 겁에 질려 구토와 설사를 하고 자신도 스트레스로 인한 시력 저하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는 베들레헴을 등지지 않았다. 눈을 부라리는 이스라엘군 사이를 뚫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공책과 한국에서 공수받은 붉은 악마 티셔츠를 나눠줬다.

이같은 애정은 결국 팔레스타인인들의 신뢰를 샀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대부'로 통한다. 며칠 전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뒤 베들레헴 시 정부가 수리할 다른 곳을 제쳐 놓고 부서진 유치원 계단을 먼저 고쳐줬을 정도다.

"서로에 대한 신뢰만 있으면 함께 살 수 있어요. 이들에게 신뢰를 되찾게 하는 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만의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구에서 공존하는 전 인류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너무 당연하지만 가까이 가기가 어려운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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