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바람 불어도 … 더 안전한 세상 향한 ‘완전한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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居 거

安 안

思 사

危 위 『좌전(左傳)』

“산비 내리려 하니 바람이 누각에 가득 차더라(山雨欲來風滿樓).”

중국 당나라 허혼이라는 사람의 시다. 비와 바람을 그렸다. 거센 빗줄기 뿌리려는 구름 낀 산, 그리고 그에 앞서 자신이 서 있는 누각에 닥쳐온 바람이 느껴진다.


동양의 시 세계에서도 이 구절은 아주 빼어난 명구로 꼽힌다. 시적인 기교가 앞서서만은 아니다. 자연의 정취를 절절하게 옮겨서만도 아니다. 바람과 비, 풍우(風雨)를 곧 닥칠 위기의 전주곡으로 이만큼 절실하게 그린 작품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릇 ‘안전’이라 함의 대전제는 ‘위기 없음’이다. 안팎으로 자신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안전이 찾아온다. 당 나라 시인 허혼의 시구가 사람들의 입에 그 오랜 세월 오르내린 것은 그 위기의 조짐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바람과 비를 잘 묘사했기 때문이다.

‘태양이 밝게 빛나는 푸른 하늘’은 날씨에 빗댄 안전함의 상징이다. 이런 날씨에 갑자기 닥치는 바람과 비는 그 같은 안전을 깨는 위협 요인이다. 진짜 바람과 비가 반드시 위기만을 의미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유컨대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 바람과 비가 곧 닥치는 상황의 긴박감이 이 시구에서는 강하게 묻어 나온다.

바람과 비를 ‘안전’이라는 주제와 함께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가 흔히 쓰는 ‘바람 앞의 등불’은 풍전등화(風前燈火)다. 편안한 집 놔두고 바깥에서 갖은 고생을 다 겪을 때 하는 말이 풍찬노숙(風餐露宿)이라고 부른다. 그냥 덧없이 지나쳐 온 저 험난했던 세월을 풍상(風霜)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람을 비롯한 동물은 본능적으로 안전함을 따라 움직인다. 사람은 어머니의 배 속에서 이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손가락을 오므리고 태어난다. 근육이 발달하지도 않은 상태지만 쥐는 힘은 강하다. 제 생명의 근간인 어미를 부여잡기 위한 것이라는 게 속설이다. 원숭이도 마찬가지다. 손가락으로 늘 어미를 잡고 떨어지지 않는다. 다 안전을 향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에 대해 경계심을 돋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이자 의식이다. 위기는 불안정성이다. 가장 위험스러운 상태를 그리는 말 중에는 누란(累卵)이란 게 있다. 달걀을 한데 쌓아 놓은 상태다. 하나라도 잘못 움직이면 쌓인 계란이 무너지면서 모두 깨진다. 그에 견줄 수 있는 반대의 상태가 정족(鼎足)이다. 발 세 개 달린 청동 솥이 정(鼎)이다. 혹은 네 개도 달고 있지만, 흔한 형태는 발 세 개 짜리다. 견고해서 흔들림 없는 상태가 ‘정족’의 모습이다.

그러한 안정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안팎, 그리고 앞과 뒤, 좌우에 숨어 있는 위기의 요인을 없애는 것이다. 동양의 지식 사회에서는 예부터 위기 요인에 대한 이 같은 사전 제거 작업을 매우 중요시했다. 편안하게 있을 때 위기를 생각하라는 뜻의 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성어는 그래서 나왔고, 오랜 세월 동안 동양사회의 큰 가르침으로 내려왔다.

이는 단독 성어가 아니다. 먼저 ‘편안한 상태에서 위기의 요소를 생각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동작이다. 그 뒤로 따르는 말이 또 있다. 그런 상태에서 위기를 먼저 생각한다면 준비를 하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말이다. 한자로 옮기면 ‘사즉유비(思則有備)’다. 그 다음 성어가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이 세 성어의 출전은 『좌전(左傳)』이다. 그 이후로 이 성어 묶음은 전통 중국 왕조에서 금과옥조처럼 쓰인다. 대표적인 게 중국 역대 왕조 중에 최고 성세(盛世)를 이룩했다는 당나라 태종 때의 일이다. 자신의 치적을 한참 자랑하던 당 태종에게 충직하기로 유명한 위징이라는 신하가 한 말이 있다. “신(臣)은 안팎으로 잘 다스려진 상태를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쁜 것은 폐하께서 편안함 속에서도 위기를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안전은 그렇게 이뤄진다. 위기 또는 위협적 요인을 충실히 제거할 때 도달하는 상태가 한자로는 안(安), 온(穩), 정(定), 평(平)이다. 그런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면 기업의 도약과 발전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 법이다.

글=유광종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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