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내부감시 '말뿐' 전산시스템부터 갖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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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증권사 직원들이 연루된 불공정거래나 횡령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하반기 들어선 한 달에 두 건 이상 증권사 직원들이 연루된 금융사고가 일어났다. 7월엔 검찰이 코스닥 등록기업 대표를 도와 주가조작에 가담한 증권사 직원을 기소했다. 키움닷컴증권 감사팀장이 고객계좌에서 6억원을 횡령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지난달엔 현대증권에서 60억원 횡령사고가 났고, 대우증권 직원이 가담한 온라인 계좌 도용 사건이 터졌다.

그러나 이런 사건에 대해 감독기관이 손을 쓸 때면 이미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거나 시장이 충격을 받은 다음이기 때문에 증권사의 자체통제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선언적으로 돼 있는 내부통제 규정을 구체적으로 고치고 모든 증권사가 전산감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허점 많은 통제=현재 국내 증권사의 내부통제는 겨우 걸음마를 뗀 상태다.

내부통제를 담당하는 준법감시인 제도가 겨우 2년 전에 도입된데다 각 회사의 통제 규정이 있으나마나 할 정도로 모호하기 때문이다. 최근 외국계 증권사인 워버그·메릴린치증권을 검사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불법 사실을 적발하긴 했지만 외국 증권사는 기업분석 보고서의 작성·승인·외부 제공에 대한 절차가 일목요연하게 규정돼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사무실에선 회사에서 제공한 e-메일만 쓰도록 하고 있다.

반면 국내 증권사는 포괄적인 통제 규정이어서 사고가 나면 누가 어디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고, 처벌도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5년간 5백91명의 내부 직원이 불공정거래 등에 연루됐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경찰이첩·면직(30.9%)보다 정직·감봉(31.4%)이 더 많았다.

그렇다고 한두 곳만 잘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지난 6월 K증권사는 대량으로 허위주문을 낸 계좌를 내부 감시 시스템을 통해 적발했다. 증권사가 이 계좌에 대해 수탁을 거부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이 고객은 감시가 느슨한 다른 증권사로 계좌를 옮겨 비슷한 거래를 하고 있다. 상반기 증권사 자체 감시로 적발한 불공정거래는 1천3백99건이지만 이중 대우증권·키움닷컴증권에서 적발한 것이 75%나 돼 증권사간 불균형이 심하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증권사들의 약정 경쟁으로 보고 있다. 최근 증권사들은 수수료 인하경쟁을 벌이면서 수익이 점점 줄고 있다. 당연히 감시업무에 투자할 여력도,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이상매매 감시 전문요원을 3명 이상 둔 곳은 43개 증권사 중 단 네곳에 불과하다. 직원 윤리 교육도 서면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다.

◇대책은 없나=우선 자체 전산 감시 시스템부터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야 지점에서 일어나는 이상매매를 본사에서 바로 확인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자체 전산감시 시스템을 갖춘 곳은 대형사 5~6곳 뿐이다. 그동안 증권사들이 투자를 미뤄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증권거래소는 거래소가 보유한 매매 자료와 각 증권사가 보유한 계좌 정보를 통합한 뒤 이를 분석해 자동으로 이상매매 징후를 알려주는 시스템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서면이나 사내 인터넷망을 통해 건수 채우기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직원 교육을 대면 교육으로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LG증권의 경우 직원 교육용 비디오를 만들어 호평을 받고 있다.

불공정거래 연루 직원에 대한 엄한 처벌도 시급하다. 최근 계좌 도용사건이 일어난 대우증권의 허성우 이사(준법감시인)는 "불공정 거래에 가담한 직원 뿐만 아니라 관리자에게도 그에 준하는 책임을 묻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증권연구원 정윤모 연구위원은 "미국의 경우는 증권사 내부 문제로 투자자가 손해를 보면 투자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활성화돼 있기 때문에 외부통제보다 내부통제가 더 엄격하다"며 "국내에서도 소송이나 시장 시스템을 통해 증권사가 어쩔 수 없이 내부통제를 강화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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