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풀밭이 진저리치며 운 흔적을 보았다

밤새 풀밭이 어둠을 끌어당겨

몸부림친 핏자국 같은 것

제 안의 물기 모두 품어 올려

적셔놓은, 젖은 수건 같은 것

지친 눈물자국 같은 것으로 풀밭은

쓰러져 있었다, 행복하게

쓰러진 풀밭에 질펀하게, 번진

이슬 쓰다듬으며, 나는, 지상의 행복이란

모두 울다가 지친 흔적인 것을 알았다

-조창환(1945~) '이슬' 중

당장 맨발로 새벽 풀밭을 밟고 싶지.지금부터 울자. 시인 박용래가 왜 눈물 바람을 했는지 이제 알겠다. 눈물은 욕망의 항아리를 깨끗하게 헹구어 낸다. 몸과 마음의 절정이다. 가장 둥글다. 나는 이 시를 여성 보컬 파도(Fado)의 처절함과 섞어 읽으며 황홀해 있는 한 시인을 오늘 보았다. 비극적 황홀. 개운하다.

정진규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