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EO들 좋은 시절 다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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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최고경영자(CEO)들의 천국으로 통하던 미국의 기업풍토가 달라지고 있다. CEO들에게 명예와 함께 엄청난 부를 안겨주던 관행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의 계기는 엔론·월드컴 등 유력기업들의 잇따른 회계부정 스캔들. 여기다 최근 2년여 동안 주가가 폭락해 주주들은 큰 손실을 봤는데도 CEO들은 여전히 거액을 챙겨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반감도 커졌다.

우선 제너럴 일렉트릭(GE)·제너럴 모터스(GM)·코카콜라·시티그룹 등 간판급 기업들이 줄줄이 임직원에 대한 스톡옵션(자사주식 매입권)을 비용으로 처리키로 했다. 스톡옵션을 많이 제공할수록 회사의 비용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앞으로 스톡옵션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유력기업의 CEO는 한해에 많으면 수백만달러어치의 스톡옵션을 받기도 했다.

회사 돈으로 경영진의 생명보험을 들어주던 오랜 관행도 없어질 전망이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회사로부터 수십억달러를 보험료 명목으로 지원받던 수백명의 경영자들이 그런 혜택을 차단 당할 상황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랠프 로렌과 마사 스튜어트, 테드 터너 등이 거론된다. 월가의 한 전문가는 약 1천6백개 상장사들이 이런 보험혜택을 CEO들에게 주는 것으로 추정했다.

거의 40년간 관행으로 굳어져 온 이 보험료 지원이 새삼 문제가 된 것은 지난 7월 의회를 통과한 기업책임법 때문이다. 회계 부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급히 마련된 이 법은 기업들의 회계규정을 강화해 부정행위를 막고 회계법인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 법은 우선 회사가 경영진에게 공짜로 돈을 빌려주는 걸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가 대신 들어준 CEO들의 보험이 회사 돈을 공짜로 빌려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스튜어트의 경우 사망시 2천7백만달러를 받을 수 있는 두개의 보험에 들었는데, 만기에 보험금이 1천8백만달러에 달한다. 보험료 대납이 무이자 대출과 같다고 최종 해석될 경우 CEO들에 대한 공짜보험료 혜택은 사라질 것이 확실하다. 이제 미국 CEO들에게 '좋은 시절'은 거의 지나간 것 같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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