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리스토텔레스 vs 살인범 古代 아테네 배경 역사추리소설… 『장미의 이름』 맥이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추리문학사상 가장 학술적인 탐정이 나타났다. 주인공은 '만학(萬學)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오귀스트 뒤팽(모르그가의 살인)을 시작으로 형사 발란더(하얀 암사자)까지 숱한 명탐정들이 뛰어난 추리력을 자랑했지만 이만큼 유명하고 박식할까. 요즘이야 범인을 미리 알려주는 도서(倒舒)추리소설까지 나오지만 원래 추리소설의 묘미는 독자가 소설 속 탐정과 범인찾기 두뇌게임을 벌이는 데 있다. 고대(古代) 그리스 철학자와 수수께끼 풀이 경쟁을 벌여야 하는 구성 자체가 일단 의표를 찌른다.

이 기발한 상상력의 주인공은 캐나다출신 여류작가 마거릿 두디. 미국 반더빌트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는 학자다. 작품은 많지 않지만 1978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이미 추리문학의 고전(古典)으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곳곳에 인문학의 향기가 배어있어 움베르토 에코나 엘리스 피터스의 고급 역사추리물과 맥이 닿아 있어서다. 보면 홈스·뤼팽·체스터턴 등 추리고전이 전집으로 되살아나는 최근 출판계 흐름에 비춰 보면 20여년만의 국내 소개는 그 작품성으로 볼 때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무대는 BC 332년 아테네. 권세가 부타데스가 이른 새벽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마침 현장을 목격한 주인공 스테파노스는 범인으로 몰린 사촌 필레몬의 변호인으로 나서 그의 무죄를 입증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궁지에 몰린 주인공은 한때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를 찾아 도움을 청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심리에 관한 통찰력, 논리적 사고력, 그리고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주인공이 범인을 찾도록 도와주는데….

옮긴이는 '탐정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애거사 크리스티의 명탐정 엘큘 포와로를 봤다지만 소설의 화자(話者)인 스테파노스의 순진한 모습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단수 풍모를 보면 홈스와 그의 조수 와트슨 박사가 연상된다. 이 과정에서 필레몬의 숨겨둔 아내, 스테파노스에 대한 암살시도 등이 얽혀 흥미를 더한다. 피 튀기는 장면도 없고 손에 땀을 쥘 긴장감도 떨어지지만 알렉산더대왕에 대한 애증, 몰락한 귀족이 겪는 수모, 선원과 용병이 받는 사회적 푸대접 등 고대 그리스 사회상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다. 무엇보다 "인간이 적을 괴롭히는 이유는 쾌감을 주기 때문이고, 친구를 괴롭히는 이유는 괴롭히기가 쉽기 때문이다"와 같은 번득이는 성찰을 추리소설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또 작가가 새로운 '아리스토텔레스 시리즈'를 집필 중이라니 정통 추리소설, 새로운 명탐정에 목마른 독자들은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김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