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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노쇠 … 후계 준비” 발언으로 군부 실세서 급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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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73년 일어난 ‘윤필용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최대 권력 스캔들 중 하나로 꼽힌다. 사건의 주인공 윤필용(사진) 전 수도경비사령관이 24일 별세했다. 83세. 그는 7년 전 식도암 수술을 받았으며 두 달 전 병이 악화됐다. 고인은 경북 청도 출신으로 49년 육사(8기)를 졸업했다. 경북 구미 출신으로 육사 2기인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총애했다. 그는 최고회의의장 비서실장(61년), 육군 방첩대장(65~67년), 월남 파병 맹호부대장(68년), 수도경비사령관(70~73년) 같은 요직을 거쳤다. 그는 군부 내 TK(대구·경북) 세력의 대부였고 전두환·노태우·김복동 등 육사 11기 경상도 세력이 중심이 되어 만든 사조직 ‘하나회’의 후원자였다.

그런 그가 73년 4월 날개 잃은 새처럼 추락했다. 이른바 ‘윤필용 사건’이다. 그는 평소 이후락 정보부장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었는데, 이 부장에게 “박 대통령 노쇠” “후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언행은 박 대통령에게 밀고(密告)되었고 박종규 경호실장과 강창성 보안사령관 등 또 다른 친위세력은 ‘윤필용 거세’를 지지했다. 박 대통령의 명령으로 가혹한 수사가 진행됐다. 수경사의 윤 사령관과 손영길 참모장 등 ‘윤필용 그룹’ 10명이 군법회의에서 징역형 등을 선고받았고 30여 명이 군복을 벗었다. 중앙정보부에서는 이후락 부장과 가까운 ‘울산사단’ 30여 명이 구속되거나 쫓겨났다. 윤 장군과 가까이 지내던 김연준 한양대 총장 겸 대한일보 사장은 수재의연금 횡령 혐의로 구속되고 신문은 폐간됐다.

1973년 4월 28일 윤필용 전 수경사령관(고개 숙인 이)과 그와 가까운 군부 인사들이 군법회의에서 징역형 등을 선고받고 있다. [중앙포토]

이 사건은 박정희 권력의 향배와 현대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후락 부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 그해 8월 도쿄에서 김대중(DJ)을 납치하는 무리수를 저질렀다. 이 납치사건은 친북 재일교포 사회를 자극했고 교포청년 문세광이 74년 8월 육영수 여사를 저격했다. 이 사건으로 경호실장이 교체되면서 차지철이 권부 내에 진입했으며 이후 차지철-김재규 갈등은 79년 10·26이란 ‘권력지변(權力地變)’을 낳았다. 80년 정권을 잡은 하나회의 전두환·노태우 권력은 윤 장군 사건수사 때 하나회를 견제했던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을 감옥에 보내어 혹독한 보복을 가했다. 윤필용 사건 관련자 중 일부는 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윤 사령관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3년이 선고된 김성배 전 준장은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에서 무죄를 받았다.

하나회가 권력을 잡으면서 고인은 한국도로공사 사장과 한국전매공사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게 당했던 단죄의 상처는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허필순(77)씨와 자녀 해관(거양 대표이사 사장)·보경·혜경, 사위 나동민(NH농협보험 사장)·조관성(한인기획 사장)씨 등이 있다. 빈소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410-6915.

 김진 논설위원 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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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한국담배인삼공사 이사장   *사망

19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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