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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피시설 지으려 그린벨트 풀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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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토박이 김지찬(59·조경업)씨는 요즘 분통이 터진다. 자신의 땅 1천3백여평이 1971년 그린벨트로 묶인 후 제대로 땅주인 노릇도 못하고 살아왔는데 최근 서울시가 金씨의 땅을 포함한 진관내동 304 일대 논·밭 2만6천여평에 서부운전면허시험장을 옮겨올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땅 주인들에 대한 보상금은 평당 1백50여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金씨는 "우리 동네는 그린벨트 지역이라고 아무 것도 못 짓게 해 목욕탕 갈 때조차 차를 타고 가야 한다"며 "소음과 매연에 시달릴 면허시험장 지으려고 우리가 그렇게 희생해온 거냐"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존 주택가에 운전면허시험장이나 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 데다 땅값도 비싸 예산을 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30여년 동안 주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며 지켜온 그린벨트가 땅값이 싸고 민원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로 '기피시설 벨트'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29일 서울시에 따르면 중랑구 상봉시외버스터미널도 신내동 그린벨트 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또 구로구는 고척동에 있는 영등포교도소와 구치소를 같은 구(區)내 그린벨트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시가 지난 2월 건교부에 신청한 '그린벨트 관리계획안'을 분석한 결과 앞으로 5년 동안 서울시내 그린벨트에 건설할 예정인 44개 시설 중 대부분이 폐기물 처리시설 등 기피시설인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계획안에 포함된 시설은 ▶중랑구 망우동 폐기물 처리시설▶도봉구 도봉동 공영차고지▶강서구 개화동 도시철도 차량기지▶구로구 천왕동 시외버스 차고지▶양천구 신정동 시내버스 차고지▶구로구 항동 음식물쓰레기 사료화시설 등이다. 이 계획안은 다음달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 건교부의 승인을 거치면 확정된다.

그린벨트에 기피시설이 잇따라 들어서는 것은 서울만의 현상은 아니다.

경기도 안양시는 만안구 석수2동 그린벨트 1천5백평에 버스공영차고지를 건립키로 했으며, 성남시는 성남동 모란시장의 혼잡과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이 시장을 인근 그린벨트로 이전하는 방안을 마련, 타당성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 남양주시는 광릉숲 인근의 그린벨트 지역인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에 쓰레기매립장 조성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이러한 무분별한 그린벨트 개발 움직임에 대해 환경정의시민연대 서왕진 사무처장은 "편리하고 예산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그린벨트에 기피시설을 짓는 것은 정부 스스로가 환경보호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정찬민·전익진·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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