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오픈 vs 브리티시 오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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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호 16면

“브리티시 오픈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니까.”
“아니, 디 오픈이라니까요.”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21>

후배 성호준 기자와 종종 말싸움을 한다. 해마다 영국에서 열리는 ‘브리티시 오픈’을 어떻게 부를 것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영국 골프 코스에 정통한 성 기자의 논지는 이렇다. ‘디 오픈’은 고유명사다. 영국 현지에서 ‘디 오픈 챔피언십’이라고 부르는데 이걸 국내에서 ‘브리티시 오픈’이라고 부르는 건 난센스다. 뭐, 이런 거다. 내 의견은 좀 다르다. 영국에서 ‘디 오픈’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우리가 그대로 불러 줄 이유는 없다. ‘디 오픈’이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오픈 대회란 말인데 이건 너무 오만하다. 오픈 대회가 영국에만 있는가. 아니 골프에만 오픈이 있는가. 테니스에도 전영 오픈이 있지 않은가. 그럼 테니스 대회도 디 오픈이라고 부를 텐가. 미국에서도 디 오픈으로 부르지 않고 브리티시 오픈이라고 칭한다. 그러므로 디 오픈이 아니라 브리티시 오픈이라고 부르는 게 마땅하다. 그랬더니 성 기자가 다시 반박한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열리는 마스터스는 왜 그대로 부르는가. 마스터스도 아메리칸 마스터스라고 불러야지. 디 오픈을 브리티시 오픈이라고 부르는 건 너무 친미적인 시각 아닌가.

논쟁은 끝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단 브리티시 오픈이라고 부르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다. 어쨌든 영국에서 열리는 대회이므로-.

지난주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브리티시 오픈에 다녀왔다. 150주년을 맞아 골프의 고향인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리는 터라 오래전부터 별렀던 대회였다. 대회 운영은 예상했던 대로 완벽에 가까웠다.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수준 높은 갤러리 앞에서 펼치는 샷 대결은 꿈의 향연이었다. 이번 대회에는 4일에 걸쳐 20만 명이 넘는 갤러리가 몰렸는데 어디에서도 휴대전화 벨소리와 셔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갤러리 스스로 골프장 입구에 마련해 놓은 보관 장소에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맡긴 채 입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리티시 오픈을 관장하는 영국왕실골프협회(R&A) 측의 상술 역시 메이저급이었다. 이번 대회 입장권 가격은 20~60파운드. 정규 라운드 입장권이 하루에 10만원을 넘었다. 대회 로고가 새겨진 모자 한 개에 20파운드(약 3만6000원), 역시 로고가 그려진 골프볼 한 개에 4파운드(약 7300원)를 받았다. 프레스센터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도 따로 돈을 받았다. 대회 기간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무려 82파운드(약 15만원)를 내야 했다. 마스터스와 US 오픈을 포함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골프대회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인터넷 비용을 따로 받지는 않는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친절한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했더니 당장 ‘KJ 초이(최경주)의 나라’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또 다른 이는 “박찬욱 감독의 팬이다. 영화 ‘올드 보이’를 수십 번 봤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비바람 속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속옷까지 흠뻑 젖도록 걸어 다니며 진정한 링크스 코스가 무엇인지 피부로 느꼈다.

“디 오픈 잘 다녀왔어요?” “브리티시 오픈이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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