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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뒤 뭘 먹고 살까" 출판 성장엔진 찾아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5년 뒤, 10년 뒤 무얼 먹고 살지를 걱정하자"는 한 재계 총수의 발언을 그중 염두에 둬 볼 동네가 있다면, 그건 출판 쪽이 아닐까 싶다. 재계의 빅5 기업들은 모바일·생명공학 등 차세대사업 찾기에 머리를 싸매고 있고, '성장 엔진'을 바꿔 다는 중장기 프로젝트 구상에 지금의 주력업종 포기까지 감수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역시 큰 돈을 만지는 사람들이라 다르다 싶은데, 그렇다면 합리적인 시장 예측이 부족했던 출판영역의 차세대 성장 엔진은 어느 쪽일까.

출판이 개척해야 할 '서부'의 하나는 다큐멘터리물과 논픽션 영역일 수 있다. 그런 판단은 다큐·논픽션이 국내 출판의 오랜 나대지(裸垈地)로 남아왔다는 점, 또 현재의 메인 마켓인 픽션물(소설)과 인문사회과학서의 성장 잠재력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출판 시장의 차세대 시장으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다큐·논픽션의 잠재력은 미국 미디어 시장의 전반적인 변화 징후에서부터 감지된다.

한국·미국 사이의 문화 시차에도 불구하고 눈길이 쏠리는 방송의 경우, 현재 미국 케이블 방송은 음악과 영상을 결합한 M-TV 시청률이 1위인데, 그 뒤를 다큐 채널들이 바짝 쫓고 있는 형국이다. 반면 한국 케이블 방송의 강자는 영화와 드라마 채널 쪽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게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세상과 그것의 리얼리티 자체가 작가 상상력의 공간을 압도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채널 다매체라는 이 시대에 '책이라는 미디어'의 시장도 그럴 수 있다. 지난해 이후 미국 출판 시장의 이채는 논픽션·다큐의 약진이다. 소수 독자를 염두에 뒀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 브르넬레스키와 건축 이야기를 담은 로스 킹의 『브르넬리스키의 돔』(Brunelleschi's Dome)은 출간 즉시 10만부를 넘기며 선전하고 있다.

2001 '내셔널 북 어워드' 논픽션상을 받은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악령-우울증』(The Noonday Demon)의 경우 우울증에 관한 정신의학 보고서를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다큐물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위 두 책의 저자는 본디 작가에서 논픽션 쪽으로 '개종'했다. 작가들의 논픽션 부문 진출은 국내에서도 부분적으로 시도된 바 있다. 소설가 공지영과 김미진이 각각 유럽 수도원 기행과 이탈리아 여행기를 시도한데서 보듯 일단 태동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문제는 질적 완성도의 문제에서 걸린다. 인상비평 수준을 넘어선 압도적 정보량과 수준이 논픽션·다큐 출판물 성공의 관건이다.

미국의 경우 『영혼의 집』의 거물 작가 이사벨 아옌데가 성적 욕망과 음식, 요리법이 담긴 훌륭한 다큐물 『아프로디테』로 성공한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또 지난해 노벨상을 받은 네이폴 역시 이슬람권 여행기를 시작해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한 논픽션 작가의 멕시코 화가의 전기물 『프리다 칼로』(84년작)의 경우 셀마 헤이웩 주연의 영화로 올 가을 개봉된다는 소식이 보여주듯 논픽션은 영상 장르로 옷갈아 입기에 좋다.

중요한 것은 실용서·학술·문학·인물평전 등 장르의 구분을 넘어선 영역, 대중·고급 출판의 이분법을 넘어선 호소력의 제3영역이 바로 다큐물·논픽션이라는 확인이다. 분단과 전쟁, 정치 격변, 경제기적 등 드라마틱한 20세기의 삶을 살아온 한국 사회야말로 논픽션·다큐의 소재의 천국이라는 발견도 중요하다. 그 출판영역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온 삶을 성찰해줄 득의의 영역인 셈이다.

문제는 역시 구체적인 '물건'만들기의 관건인 필자 발굴, 출판사 에디터십의 극대화 문제다. 몇해 전 랜덤하우스사가 영어 저술을 중심으로 해서 '20세기 픽션 100선' '20세기 논픽션 100선'을 같은 비중으로 뽑은데서 나타나듯 두개의 영역은 시장이 다르면서도 상호 보완적이기 때문에 문화적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다.

그렇다면 시장은 좁아지고, 각종 시상제도는 과잉인 문학 장르에 대한 과도한 미련은 잠시 접어둘 필요가 있다. 최근 문제가 된 주례사 비평이란 것도 경쟁력을 잃은 장르 내부의 우울한 뒤끝의 모습이고, 문화 시장의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 내부자 거래일 수 있다. 기존의 메인 마켓(픽션)을 보완하는 새 시장에 대한 발견은 그래서 중요하다. 국내 출판의 구조와 변화를 더듬는 이 글은 조만간 '문학 장르의 내부자 거래 구조'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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