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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행위'로 당내 눈총받는 이해찬 "李후보 낙마 강조하려다 말실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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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해찬 의원은 22일 온종일 동료 의원들과 당직자들의 따가운 눈총에 시달렸다.

오전에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화갑(韓和甲)대표는 李의원을 향해 "오늘 매를 좀 맞아야 할 것 같다"고 질책했다. 추미애(秋美愛)최고위원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 됐다. 한나라당이 뭐 좀 하나 걸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딱 걸려버린 셈"이라고 원망했다.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려준 격"(朴柱宣의원), "우리가 검찰과 내통해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도와줬다"(咸承熙의원)는 지적이 잇따랐다.

'병역비리규명소위' 위원장인 천용택(千容宅)의원은 "참담하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李의원을 돌로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공박했다.

당직자들도 "정책위의장에서 물러난 뒤 소외감을 느껴오다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한 발언일 것"이라고 발언 배경을 분석하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李의원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다니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됐고,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다시 옥고를 치른 민주당 내 대표적인 재야출신이다.

그는 87년 대선을 앞두고 재야세력이 분열됐을 때 '비판적 지지론'으로 평민당 김대중(金大中)후보를 지지했으며, 다음해인 88년 13대 총선 때 서울 관악을에 공천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기획력과 분석력이 뛰어나 97년 대선 때 金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정연한 논리로 박상천(朴相千)최고위원, 임채정(林采正)정책위의장과 함께 민주당 내 '3대 논객'으로 불려왔다.

현 정부 들어 교육부장관과 정책위의장·최고위원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교육부장관 때 '특기·적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현재 대학 1학년(당시 중3)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됐다는 이른바 '이해찬 1세대' 논란을 낳기도 했다.

李의원은 지난해 7월 당내에서 판교개발 규모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을 때 대규모 개발론자의 주장을 "철딱서니 없는 소리"라고 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21일 발언은 李의원이 당무회의 도중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밖에서 기다리던 일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나왔다. 그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아들 병역의혹 때문에 낙마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다 문제의 발언을 하게 된 것이다.

한편 李의원은 최고위원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기사화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어렵더라도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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