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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민 케인이 1위야?" 古典영화 예찬과 비아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오,맙소사!. 또 '시민 케인'인가. 다른 좋은 영화들도 수두룩한데, 왜 케케묵은 '시민 케인'인가."

"마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신입생들에게 주는 필독서 목록처럼 권위적이고 고루한 리스트다."

영국을 대표하는 영화잡지인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지난 10일 '평론가가 뽑은 역대 영화 베스트 10'에서 오슨 웰스 감독의 1941년작 '시민 케인'이 수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1백44명의 평론가가 뽑은 2위는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58편),3위가 장 르누아르 감독의 '게임의 규칙'(39년), 이어서 '대부 1,2'(프랜시스 포드 코폴라·72·74년)-'도쿄이야기'(오즈 야스지로·53년)-'2001 우주오디세이'(스탠리 큐브릭·68년)-'전함 포템킨'(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25년)·'일출'(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27년)-8과 1/2(페데리코 펠리니·63년)-'사랑은 비를 타고'(진 켈리·스탠리 도넌·51년)의 순이었다.

1952년부터 10년마다 실시해 온 이 설문조사 결과 올해는 92년과 큰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시민 케인'이 62년 이후 줄곧 1위(52년엔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이 1위)자리를 지킨 데다 가장 최근 작품이 30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에 일부에서 비아냥대는 투로 이의를 던졌다.

한 영국신문 기자는 "영화는 매년 그 형태가 바뀌는 현대적인 예술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민주적인 매체다. 이 잡지의 편집장은 '시민 케인'이 현대영화의 셰익스피어라고 말했지만 난센스다. '햄릿'은 배우와 연출자가 바뀔 때마다 작품의 성격이 변하지만 영화는 한번 탄생하면 줄곧 그대로다. 한참 철 지난 작품을 모아 어떡하자는 말이냐"며 평론가들의 엘리트주의를 논박했다.

그러나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순위 매기기는 반대자들이 비판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평론가들도 영화가 오락이고 혼곤한 일상을 잊게 하는 환각제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바 아니다. 그 필요성도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하나의 예술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욕구도 그만큼 강하다. 1백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아온 영화를 이른 시간 내에 문학과 연극 같은 경지에 안착시키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그래서 구해 보기도 쉽지 않은 '낡은 영화'를 걸작의 반열에 안치함으로써 일종의 '정전(正典)'을 구성하고 싶은 것이다. 문학에서의 '오디세이'와 '신곡' '돈키호테'와 '죄와 벌''보부아르 부인'처럼.

장정일이 '아담이 눈 뜰 때'로 데뷔할 무렵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도 톨스토이도 읽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못 느꼈다"고 도발하듯 천명했던 것처럼 오늘날엔 창작자들조차 고전을 감각적인 즐거움을 갖고서 찾아 읽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문학평론가들에게 역대 최고의 소설 10편을 대라면 현대 소설보다 19세기 작품에 더 많은 표를 던질 것이다. 소설의 원형이나 발원지를 순례하고 싶을 때, 혹은 새로운 소설의 돌파구가 막막할 때 의지하는 곳이 고전이듯 영화에도 그런 작품들은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한다는 신조가 이번 결과에 담긴 메아리다.

어떤 젊은 감독은 '스타워즈''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로키' '조스''포레스트 검프''제리 맥과이어''백 투더 퓨처''수퍼맨' 등을 베스트 10으로 꼽았다. 뭐 좋다. '아비(전통)없는 자식'은 극복의 대상이 없는 만큼 컴플렉스 없이 자신의 길을 헤쳐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엄부(嚴父)의 존재가 그 아버지를 넘어서고 말겠다는 '살부(殺父)'의 의지를 고양함으로써 자식을 더 강하게 만들기도 하지 않던가.

고전을 인정하면서도 그 무게에 억눌리지 않는 것, 진정 영화에 애정을 가진 자의 태도라고 믿는다. 역사의 인력권(引力圈)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건 영화라고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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