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정'서 180도 변신 :김석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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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멀리서 걸어오는 그에게서 처음 눈에 띈 것은 이마의 시퍼런 멍이었다. 거기에 손톱 크기만한 반창고는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 저 남자에게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사이 그가 다가와 앉았다.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런 걸 분장술의 개가라고 해야하나.

"아이쿠, 쑥스럽네요. 그렇게 실감나 보였어요?"

드라마 촬영 중이던 김석훈(31)은 이마의 멍도 지우지 못한 채 부랴부랴 인터뷰 자리에 나타났다. 그간 그가 TV 드라마 '토마토' '경찰특공대'와 연극 '햄릿'에서 보여준 모범생 이미지가 확 날아갔다. 그는 어느새 건달로 변해 있었다.

"새 드라마를 시작할 땐 이미지를 좀 바꿔보고 싶었어요. 이번이 좋은 기회예요. 항상 엘리트 청년 연기만 하려니까 좀 갑갑하던 걸요."

그는 28일 시작하는 SBS 드라마 '정'에서 1백80도 연기 변신을 꿈꾼다. 주인공 병수(유준상 분)의 철없는 남동생으로 노름판 딜러·땡처리 중계업자 등 돈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하는 일마다 망해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는, 어찌보면 무척이나 불쌍한 인물이기도 하다.

"연기라고 할 수도 없어요. 이런 날건달 같은 캐릭터가 나 자신에게도 있으니까요. 항상 반듯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저 웃기는 구석도 많거든요."

정확히 세마디에 한번씩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그이고 보면 그간 대중에게 보여진 이미지는 지극히 일부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는 대학시절(중앙대 연극학과)부터 연극을 동경했고, 졸업 후 곧바로 국립극단 단원으로 들어가 시작도 순조로운 편이었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던 TV 탤런트가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국립극단에 있을 때예요. 하루는 단장님이 불러서 갔더니 옆에 있던 어떤 아저씨가 뚫어져라 쳐다봐요.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한 1분 정도가 흘렀어요. 그러더니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게 끝이었죠."

그는 그렇게 '아저씨'라 지칭한 드라마 PD의 눈에 띄어 드라마 '홍길동'의 주인공에 낙점됐다.

TV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그의 삶의 중심추는 항상 연극이다. 몇달간 고생하며 연습하는 것도 보람 있고 무대에서 최고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작업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연극 '햄릿'을 통해 그는 "여전히 내가 설 자리는 연극 무대"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1백만원도 채 안되는 월급을 받고도 행복했던 극단 시절, 그는 더 이상 욕심 부릴 게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단다.

"2년 넘게 여자친구 없이 혼자 지내다보니 좀 외로워요. 요즘은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하는 게 행복의 제일 조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디 좋은 사람 없나요?"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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