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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정국을 읽는다<上> : 정당 패턴이 바뀌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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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당 논의가 시끄럽다. 과거에도 대선 때마다 있었지만 이번의 경우 제왕적 권력의 후퇴와 새로운 리더십의 부재에서 나온 혼란으로 보인다. 최근의 신당 논의가 정국 전체에 어떤 의미변화를 수반하는지 신예 정치학자들이 진단한다.

편집자

정치의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어디서든 삼삼오오 모이게 되면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요즘 정치 이야기다. 그런데 많은 국민들은 이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가 과거에 비해 혼란스럽고 불안정해 보인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 선거가 불과 넉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예전과 달리 아직까지 누가 출마할 것인지조차 불확실하고, 정치권은 과거보다 더더욱 사생결단을 하고 정쟁에 몰두해 있다. 국민참여 경선제의 도입과 함께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주었던 올해 초를 생각하면 너무도 달라진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이처럼 허둥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과거와는 달리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가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노풍'이 불었을 때 노무현은 이회창보다 20% 이상 앞서 갔지만 이젠 정몽준에게도 뒤지면서 3위로 내려앉았고, 다른 후보들에 대한 지지 여론 역시 안심할 수 없을 만큼 대단히 유동적이다. 이러다 보니 누가 당선될 것인지에 대한 예견은 고사하고 어느 후보가 과연 마지막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것조차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다. 김영삼, 김대중 등 출마가 예견된 후보들이 있었을 때에 비하면 불확실성은 매우 높아진 셈이다. 더욱이 지역주의가 모든 것을 결정했을 때는 유권자들의 선택이 분명했고 따라서 선거의 승패를 예견하기가 쉬웠다. 내 고향 출신 후보를 선택하면 되었고 내 편, 네 편 가르기도 쉬웠다.

하지만 김대중, 김영삼이 모두 빠진 이번 선거에는 과거처럼 지역주의의 강한 영향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고 '우리 편'을 찾아내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물론 아직 지역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또 이를 대신할 새로운 정당 지지의 형태가 확고하게 드러난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기존 정당 지지 패턴으로부터의 이탈(dealignment)이 시작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지역주의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긴 했지만 이를 대신할 대안은 아직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은 누구를 선택할지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여론은 대단히 가변적이다. 정당간 정쟁이 더욱 혼탁해진 느낌이 드는 것도 그동안 선거에서 각 정당이 믿어왔던 지역주의라는 '굳은 패'가 약화된 상황과 관련돼 있다.

민주당 내부의 혼란도 마찬가지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지역주의에 크게 의존해 왔다. 정치적 곤경이 닥칠 때마다 호남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이들을 지켜줬다. 그런데 이러한 민주당 지지 기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김대중이 현실 정치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민주당은 과거와는 다른 정치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지금 나타나는 민주당의 내분은 3金시대와 지역주의를 넘어서 당의 새로운 정체감을 찾기 위해 거쳐야 하는 불가피한 과정일 수 있다. 신당 창당 등 여러 가지 논의가 내부적으로 많이 제기되는 것도 결국 '김대중 없는 민주당'의 새로운 정체감을 모색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의 정치적 혼란과 불안정의 모습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3金씨가 지역을 볼모로 정당을 장악해 왔을 때 이런 혼란스러움은 없었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길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 정치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새로운 변화를 위한 생산적 진통일 수 있다.

그러나 지역주의와 3金시대의 극복은 변화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현재 민주당이 한심스러워 보이는 까닭은 권력에 대한 집착과 욕심만 보일 뿐 새로운 시대의 희망과 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란이 자멸로 끝나고 말지 새로운 정치를 위한 진통일지 두고봐야 할 일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세력은 역사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는 점만큼은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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