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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에선… 70년대 애니 가수들 콘서트로 속속 부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일본에는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3대 '아니메(일본 만화영화)가수'가 있다. 미즈키 이치로(49)·호리에 미쓰코(45)·사사키 이사오(51)가 그들이다. 미즈키 이치로는 '마징가Z''그레이트 마징가''우주해적 캡틴 하록' 등 자신이 부른 만화영화 주제가들로만 24시간 연속 1천곡 라이브 공연을 하는 데 성공해 기네스북에 오른 인물이다. 30년이 넘도록 '아니메 송의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호리에 미쓰코는 '캔디 캔디''꽃천사 루루''개구리 왕눈이' 등으로 유명하다. 사사키 이사오는 '우주전함 야마토''은하철도 999''신조인간 캐산' 등을 불러 아니메 송의 대왕이라 불린다.

1970년대 초반 만화영화 주제가 가수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이들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전성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매년 여름 시부야의 '온 에어 스테이지'에서 열리는 '수퍼 로봇 스피리츠'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서다.

미즈키와 호리에가 주축이 돼 97년 시작한 이 공연은 지난 30년간 애창된 만화영화 주제가들을 원조 가수들이 직접 부르는 무대다. 다만 콘서트의 테마를 정하면서 일본 내 엄청난 매니어층을 가진 로봇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주로 부르다 보니 이렇게 명명됐다.

반응은 뜨겁다. 97년 첫회 공연부터 지금까지 2천여석의 객석은 예매를 시작하는 당일에 매진되고 있다. 공영방송인 NHK가 거의 매년 중계를 하는가 하면, 98년 공연 실황을 담은 DVD의 경우 18만장이나 팔려나갔다. 그 결과 2000년부터는 요술 공주 시리즈 주제가를 주로 부르는 '아니송 여자부 축제'같은 유사공연까지 생겨났다.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열린 올해의 경우, 로봇 애니메이션만이 아닌 전 장르의 주제가를 부르는 '수퍼 아니송 스피리츠'로 확대돼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이 공연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가장 큰 이유는 그저 어린 시절 목소리로만 아련히 기억하고 있었던 추억의 가수들을 실제 무대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3인 외에도 '드래곤볼Z'의 가게야마 히로노부, '이웃의 토토로'의 이노우에 아즈미,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프란다스의 개'의 오스기 구미코 등이 초대가수로 등장했다. 여기에 그동안 현역에서 은퇴하고 밤무대를 전전하던 '근육맨'의 구시다 아키라와 '신세기 에반겔리온'의 다카하시 료코까지 가세해 팬들을 열광시켰다.

흥미로운 것은 세대를 초월한 팬들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 '마징가Z'를 보고 자란 중년층에서부터 '백수전대 가오레인저' 같은 최신 작품을 좋아하는 신세대가 나란히 입장했다. 어린 자녀를 데려오는 부모들도 적지 않았다.

일단 막이 올라가니 이들은 "대~한민국"을 외치는 붉은악마들 못지않게 무대 위의 가수와 혼연일체가 됐다. 마치 사전에 리허설이라도 한 것처럼, 주제가 특유의 포즈와 구호를 정확히 따라 외치며 마치 자신들이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 한마음이 되어 무대를 달궜다. 무대 뒤에서 만난 미즈키는 "내가 부른 '마징가Z'가 한국에서도 자주 불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단순한 멜로디에 유치한 가사라며 저열한 음악으로 취급받는 만화영화 주제가가 이곳 일본에서는 원조 가수들이 뿜어내는 정열과 이들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고유의 영역을 지켜가고 있었다.

송락현

<'써드아이' 콘텐츠기획국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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