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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경제협력 심화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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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늘날 우리는 세계경제 전체가 하나로 통합되는 세계경제의 '지구촌 경제화' 추세와 함께 지구촌의 이웃끼리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지역경제의 공동번영을 노리는 지역화 추세의 가속화를 목격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유럽경제공동체 형성 노력이 지속돼 현재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유럽연합(EU)의 단계에 와 있으며, 북미대륙에서는 미국 주도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돼 미국·캐나다·멕시코 경제의 깊은 통합이 이룩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인 일본, 멀지 않은 장래에 경제규모 면에서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는 13억 인구의 중국, 그리고 신흥공업국의 선두주자로서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한국이 자리한 세계경제의 또 다른 중요한 한 축인 동북아지역에서는 지역경제의 공동번영을 위한 국가간 협력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은 최근까지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한·중·일 3국은 아직도 반세기 이전의 불행했던 역사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상호불신과 이해부족, 그리고 상호견제 분위기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1997~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를 통해 이웃나라와의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후 한·중·일 3국간에도 최근 들어 경제협력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시작됐다. 그러나 한·중·일 3국만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허심탄회한 논의를 펼치기에는 아직도 여건이 성숙되지 못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이 모이는 자리에 개별적으로 참여하고 이 아세안+3 모임이 있을 때 한·중·일 3국 정상과 관련 장관들이 별도 모임을 하는 정도의 단계에 와있는 것이다. 과연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지역의 경제협력 심화는 불가능한 것인가. 얼마 전 미국 호놀룰루에서는 한·중·일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 학자들도 참여한 동북아 협력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한·중·일 3국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동북아지역이 갖고 있는 무한한 경제발전 잠재력을 현재화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해 북한과 몽골, 그리고 중국 및 동부 러시아지역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조달을 위해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의 구체적인 방안도 논의되었다.

또한 2000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개최됐던 아세안+3 재무장관 회의에서 합의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즉 아세안+3 참여국 간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아시아 통화기금'으로 확대발전시킬 필요성도 강조됐다. 그리고 한국의 철도망과 연계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 방대한 매장량을 갖고 있는 러시아 천연가스 개발과 중국·일본·한국으로 연결하는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안도 심도 있게 논의됐다. 아울러 동북아지역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간접자본 등의 하드웨어 건설뿐 아니라 국제수준에 맞는 법과 제도 도입, 기업 지배구조 개선, 각종 통계의 투명성 제고 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협력을 위해 적절한 기구 창설이 시급함도 지적됐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구체적인 방안들도 한·중·일 3국에 비전 있는 정치 리더십의 출현이 없는 한 탁상공론에 불과할 것이라는 데에 있다. 가장 절실한 것은 일본의 미래지향적인 리더십 발휘다. 우선 한·중·일 3국 간에 상존하는 과거의 앙금을 지우고 이 지역 전체의 공동번영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일은 일본 리더십만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앞으로 상당 기간 중국은 한·중·일 3국의 긴밀한 경제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상대적으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강력한 리더십 발휘에 대한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은 중간자적 입장에서 이 지역의 경제협력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입지가 있는 것이다. 이 지역의 경제협력 심화를 위해 한·중·일 3국의 비전 있는 정치지도력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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