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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결국 科學이었다" 돌아온 도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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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해 상반기 'TV 논어 강좌'를 통해 일반 대중 사이에 뜨거운 동양학 열풍이 불게 했고 지식 사회에선 '학문적 진지성'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동양학자 도올 김용옥(金容沃·54)씨가 대중에게 돌아왔다. 한달간에 걸친 인도 기행, '붓다의 화신'으로 평가받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67)와의 만남 등을 정리한 노작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전3권) 출간에 맞춰 참여불교재가연대 부설 불교아카데미에서 마련한 대중 강연회를 통해서다. 강연회 제목은 '불교의 본래 모습-달라이 라마를 만난 후.'

보슬비가 오락가락하는 10일 오후 동국대학교 본관 중강당에서 열린 강연회는 오후 2시45분부터 5시15분까지 두 시간 반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됐다. 강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인파는 순식간에 8백~9백명으로 불어나 5백석의 강당 좌석은 물론 강당 중앙 계단 통로와 좌·우 측면 통로, 연단까지 점령해,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식지 않은 김씨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 자리에 나와주신 청중들은 내가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돌아왔다고 하니까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궁금해서 온 것 아니냐"라는 등 특유의 유머, 코믹한 제스처를 곁들여 레미제라블과 프랑스 혁명, 월드컵, 한국 정치의 현실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던 김씨의 강연은 '불교는 무신론'이라는 화두를 붙잡았다.

달라이 라마와의 대담에서 대뜸 "그럼 불교는 종교인가"라고 물었더니 "종교가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럼 뭡니까" 했더니(이 부분에서 김씨는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의 억양 비슷한 흉내를 냈다) 달라이 라마는 "그건 과학이다"라고 답했다.

용맹정진을 통해 윤회에서 해탈해 열반에 이른다는 믿음을 바탕에 둔 불교와 과학이 어떻게 연결된다는 걸까. 김씨는 핍팔라 나무 밑에서 득도, 붓다(깨달은 사람)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의 깨달음을, 욕망의 불길을 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로 이해하는 것은 불교 자체를 극도로 폄하하는 편벽한 소치라고 주장했다. 자기 단련에 뛰어나 붓다가 됐다고 한다면 불교 이외의 영역에서도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붓다가 깨달은 것은 우주와 인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바른 앎, 지혜였다고 강조했다. 바른 앎은 인과관계를 뜻하는 연기(緣起:사물이 존재하는 근본 이유)적 방식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까지 표현한 연기의 방식으로, 인과관계의 맥락에서 사물을 볼 줄 알아야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역시 인과관계를 따지는 과학적 인식방법에 익숙한 현대의 우리들에게 붓다의 깨달음은 시시하게 느껴지지만 2천5백년 전 붓다가 현존했을 당시에는 혁명적인 사고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교와 과학과의 연결 고리를 통해서 "불교는, 과학이라는 인과관계의 신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영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라는 결론에 이른다.

김씨는 이런 이론 성립이 붓다의 가르침이 거의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는 초기 불교 경전인 『팔리어 삼장(경장·율장·논장)』 연구를 통해 가능했다고 밝혔다.

한국 기독교계에 대한 거침없는 표현과 비판적 통찰 등 김씨 특유의 직설적 어법과 면모도 여전했다. 그는 20세기 들어 기독교는 사랑·평등·희생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피폐화로 인해 종교로서 제 구실을 못하던 불교의 공백을 훌륭히 대체했고 특히 교육 분야에서의 공헌은 지대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 기독교가 우리 사회를 광신적으로 만든 것은 큰 폐해"라고 비판했다.

특히 김씨는 기독교가 만들어놓은 이같은 광신주의는 정치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돼 이를 테면 지역감정과 같은 맹목적 광신주의를 낳았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그는 "이제 한국은 20세기 한국사회를 이끌었던 기독교를 대신해 초기 불교의 합리적·과학적 전통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 강연 말미 김씨의 흰색 도포는 거의 땀에 젖어 있는 듯했다. 청중들의 세찬 박수가 길게 이어졌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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