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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거부당한 경제특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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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해제하라.”

황해경제자유구역 당진 송악지구(1303만㎡) 주민들의 절규다. 이 지역 주민 400여 명은 20일 오전 9시 당진군 당진읍 수청리 황해경제자유구역청 앞에 모인다. 경제자유구역 지정 해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결의대회다.

송악지구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은 지구 사업자인 당진테크노폴리스㈜가 경기침체와 자금난을 이유로 최근 사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당진테크노폴리스는 2008년 7월 한화그룹(지분 90%)과 당진군이 자본금 160억원을 마련, 공동 설립했다. 승인 기관인 지식경제부도 외자유치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이 지역의 사업 면적을 축소키로 했다.

그러자 그동안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던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주민대책위 김진선(54) 위원장은 “개발사업구역에 편입되는 바람에 집도 마음대로 지을 수 없다”며 “재산권을 무한정 제약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의 경제자유구역이 표류하고 있다. 규제를 없애 외자를 유치하겠다던 비전은 간 데 없고 늑장 개발, 부실 개발에 따른 불만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제1호인 인천경제자유구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짧은 역사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어난 혼란의 나이테가 그려져 있다. 정권의 입맛과 정치논리에 시달린 흔적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이 탄생한 것은 노무현 정권 초창기인 2003년 8월. 김대중 정부에서 준비된 사업이었다. 중국의 경제특구처럼 선도적인 모델을 만들자는 의도였다. 2003년 10월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개청식에서 노 대통령은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의 핵심 사업’이라며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곧 국가균형발전론이 나라를 뒤덮었다. 수도권의 규제 올가미는 그대로 놔둔 채 행정수도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해 행정수도(행정도시), 혁신도시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수도권 규제’란 멍에를 짊어진 채 발목이 묶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5월엔 경제자유구역 3곳이 추가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그 순간 ‘선택과 집중’은 사라졌다. 게다가 정부는 굵직한 기업을 세종시로 몰아 넣겠다고 공언했다.

희소성이 사라진 경제자유구역이지만, 그나마 없으면 차별인 양 도(道)마다 하나씩 가져야 하는 ‘구색’이 됐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이미 있는 6곳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고 말했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을 끌어들일 유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한국경제연구원이 개최한 금융포럼에서 오엽록 삼정회계법인 부대표는 “국내 기업에 대해서도 외국의 투자기업과 동일한 세제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당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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