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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후의 날’에도 떠 있다 … 하늘의 펜타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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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방장관 전용기가 공중 급유를 받고 있는 모습. 조종석 창문 너머로 전용기와 파이프로 연결된 급유기가 보인다.

18일 오후 5시(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 미 국방장관 전용기 E-4B가 “위잉” 하는 굉음을 내며 이륙했다. 무장 경호요원들을 대동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탑승한 직후였다. 기내에는 중앙일보를 비롯, 뉴욕 타임스·교도통신 등 국내외 주요 언론사 기자 15명이 이미 보안 검색을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2+2 회담) 참석차 방한하는 게이츠 장관의 전 일정을 수행할 취재진이다. 보잉 747-200 비행기를 개조한 국방장관 전용기는 조종석을 제외하고 6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장관 전용 집무실, 통신실, 작전 상황실, 회의실, 브리핑 룸, 3층 간이침대가 붙어 있는 휴식공간 등이다. 기자들은 브리핑 룸에 자리를 잡았다. 좌석마다 설치된 산소 공급기와 통신설비가 눈에 띄었을 뿐 당초 예상했던 것만큼 특별한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느낌을 갖기 어려웠다. 그러나 미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E-4B의 기능에 대해 설명을 듣자 이내 생각이 달라졌다.

대당 2억2300만 달러(약 2700억원)에 달하는 국방장관 전용기는 ‘마지막 운명의 날’(Doomsday Plane)이란 별명을 가졌다. 갑작스러운 핵 공격 등으로 펜타곤(미 국방부 본부) 등 미국 본토의 지상통제센터가 제 기능을 발휘 못하는 상황에 대비해 공중에서 모든 작전 통제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놨기 때문이다. 유사시 하늘에서 ‘움직이는 펜타곤’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E-4B에는 핵 공격을 포함, 어떤 전자기파(EMP) 공격에도 컴퓨터 통제시스템이 견딜 수 있도록 초강력 반사 도료층이 비행기 전체를 두텁게 감싸고 있다. 세계 어느 곳의 미군 지휘관과도 즉각 교신이 가능하게끔 최첨단 통신시설도 갖췄다. 미 국방부는 모두 4대의 E-4B를 운용하고 있으며, 항상 1대는 하늘에 떠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미 공군 소속 E-4B 승무원은 “비상사태 시 수일 동안 공중 체류가 가능하도록 비행 중 급유를 통해 늘 일정량의 연료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륙 한 시간 후 제프 모렐 대변인이 게이츠 장관의 서울 일정을 간략하게 브리핑했다. 그는 지난주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동해를 일본해라고 언급한 데 대해 “이 문제가 한국에서 민감한 문제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어떻게 말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모르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오후 8시. 하얀색 와이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게이츠 장관이 예고 없이 브리핑 룸을 찾았다. 그는 “긴 여행 일정 동안 편안하게 보내기 바란다”는 인사를 건넸다.

오후 9시. 모렐 대변인과 마이클 시퍼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가 브리핑 룸을 찾아 21일 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부산에 입항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즉각 기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후 11시 앵커리지 남쪽 상공에서는 보기 드문 ‘에어 쇼’가 펼쳐졌다. 장관 전용기에 비행기가 접근해 공중급유를 한 것이다. 전용기 앞쪽에서 조금 더 높이 날던 급유기는 꼬리 부분에서 긴 파이프를 내려뜨려 전용기 코 부분의 급유구에 정확하게 연결시켰다. 한 대가 약 15분에 걸쳐 급유를 마치자 인근 상공에서 기다리던 두 번째 급유기가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15시간의 비행 동안 기내 어느 곳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미 국방장관 전용기 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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