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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까진 자신있다 태극마크 꿈도 안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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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튀는 패션만큼이나 성격도 튀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분명 선입견이었다. 그는 소탈하고 솔직했다.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했다.

4일 전주에서 벌어진 부천 SK전에서 프로축구 '1백33경기 연속 무교체 출전'이라는 신기록을 세운 전북 현대 골키퍼 이용발(29)을 그의 숙소에서 만났다.

-소감은.

"부천 시절 조윤환 감독이 감독으로 부임한 1999년 이후 쭉 출전했다. 내 기록은 조감독과 함께 했다고 해야 할까. 특히 그 당시는 군대에서 막 제대해 별로 두각도 보이지 않았을 때인데 나를 믿고 기용한 조감독에게 감사할 뿐이다."

-현역으로 군복무를 했다고 들었다.

"96년 12월 축구부대가 있는 경찰청에 입대할 예정이었다. 면접도 봤다. 그런데 갑자기 입대 한달 전인 11월 육군에서 영장이 날아왔다. 방법이 없었다. '땅개'로 26개월을 꼬박 보내야 했다."

-그럼 축구를 2년 넘게 쉰 것인데.

"입대 후 첫 1년 동안 휴가를 몽땅 다 썼다. 프로팀이 나를 버릴까봐 초조해 자꾸 밖에 나온 것이다. 그래도 차마 팀에 연락하지도 못했다. 그만두라고 할까봐 겁이 났다.1년쯤 지나서 '제대하면 다시 쓸테니 몸이나 잘 간수하라'는 말을 듣고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 고참이 돼선 틈만 나면 졸병들을 데리고 연병장에서 공을 찼다. 축구를 싫어하는 애들이 많았는데 아마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머리에 모자·두건 등을 쓴다. 튀려고 하는 건가.

"99년 말 버스에서 머리를 부딪쳐 뒤통수에 조그마한 혹이 생겼다. 남들이 볼까봐 경기에 모자를 쓰고 나섰는데 사람들이 어울린다고 하더라. 그때부터 패션을 생각하게 됐다. 중절모를 쓰다 시야를 가려서 두건으로 바꿨더니 반응이 가위 폭발적이었다. 이제 나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1백33경기 연속 출전이 영광이지만, 후배들은 전혀 기회가 없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가.

"나도 94년 프로에 뛰어든 이후 99년 초 군대를 제대할 때까지 5년간 정확히 16차례 경기에 나섰다. 95년엔 벤치에만 앉아 있었다.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것은 그때 '기다림'을 배운 덕분이다. 후배들도 언젠가 분명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 항상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국가대표를 한번도 못했는데.

"태극마크를 달면 떨려서 경기를 못할 것 같다. 꿈도 꾸지 않는다. 목표라면 40세까지 그라운드에 서고 싶다. 자신있다."

전주=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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