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들의 자기 관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슬래머' 새미 소사(시카고 컵스)는 올해 스프링캠프를 시작하던 날, 느닷없이 커다란 우산을 쓰고 나타났다. 그날, 대부분의 미국 언론이 그의 첫 모습을 담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들의 카메라에는 자연스럽게 소사가 들고 나온 우산의 상표가 커다랗게 잡혔다.

LA 다저스의 거포 숀 그린의 유별난 버릇은 이제 국내팬들과도 낯익을 정도가 됐다. 그린은 홈런을 치고 난 뒤 더그아웃에 들어오면서 자신이 끼고 있던 장갑(배팅 글러브)을 벗어서 관중석의 팬(꼭 어린이 팬을 찾는다)에게 던져준다. 그때마다 중계카메라는 그린의 모습과 장갑을 비추고 그린의 장갑이 어느 회사 제품인지가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메이저리그 최고 유격수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노마 가르시아파라(보스턴 레드삭스)도 타석에 설 때 독특한 버릇이 있다. 상대 투수의 투구 때마다 타석을 벗어나 장갑을 고쳐 끼고, 양쪽 다리를 여섯번 정도 번갈아 짚어가며 타격자세를 가다듬는다. 카메라는 가르시아파라의 이런 독특한 준비자세를 늘 따라다닌다. 그때마다 스파이크와 장갑의 로고가 TV화면에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이들처럼 특정 용품회사와 계약을 하고 있는 프로선수라면 자신만의 독특한 '설정'을 통해 그 회사를 알린다. 그런 행동이 자연스럽고 노련할 수록 용품회사의 평가가 좋아진다. 선수들은 그런 행위를 통해 자신의 '광고상품성'을 높이기도 한다.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도 귀국 인터뷰 때면 꼭 자신과 계약을 한 용품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경기 도중 일반 시청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스파이크 끈을 졸라매는 것은 '1년에 수차례'로 지정돼 아예 계약서에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스파이크가 클로즈업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회사의 로고가 부각되도록 하기 위해서임은 물론이다. 이처럼 메이저리거들의 몸짓 하나, 말 한마디는 모두 카메라에 노출되며 이는 철저히 계산된 광고 효과로 이어진다. 선수들도 이를 충분히 알고 있다.

메이저리거들의 '카메라를 의식한 행동'을 국내 프로야구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다. 시장 규모와 중계방송 횟수, 노출 빈도의 한계에 따른 광고효과 등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처럼 큰 광고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플러스 효과는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바로 '공인으로서의 자세''프로선수로서의 품위 유지'를 스스로 느끼고 바로 잡아가는 것이다.

2년 전 프로야구 선수협 출범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던 프로야구 선수들 대부분은 메이저리그 팀의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때 약간 놀랐다. 자신이 한국프로야구 선수라면 자신의 팀에서 만든 기념모자쯤은 사석에서 쓸 줄 아는 자존심과 소신이 필요하다. 그게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행동이다. 현역에서 뛰고 있는 다른 팀 선수의 기념시계를 즐겨 차는 A구단 B감독(물론 선물받았겠지만)도 비슷한 경우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더라도 유니폼을 입었을 때는 분명히 승부를 겨루는 상대인 만큼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남의 눈을 의식한 행동'이 꼭 상업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 품위도 높여줄 수 있다.

야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