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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꼴찌 프로에도 애정어린 박수 갈채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박수~." 5년 동안의 조연출 기간 중 공개방송 녹화 스튜디오에서 무대 진행(출연자들에게 연출자의 지시대로 말 또는 동작 등 프로그램 진행 전반에 대한 신호를 주는 조연출의 임무)을 하면서 가장 먼저 배웠던 AD(조연출)의 현장업무 중 하나다.

박수를 유도해야 하는 순간마다 조연출은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긴장하면서 '큐' 사인을 주는데 조금만 타이밍이 어긋나도 녹화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그래서 공개방송 프로그램에선 '동원 방청객'의 메커니즘을 이용하기 일쑤다. 제발로 걸어온 방청객들이 연출하는 '자연산' 박수와 환호로는 분위기를 맞춰나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의성과 효율성을 위한 '동원 방청객' 수법도 너무 과장되면 프로그램의 진실성을 해치게 된다. 1980년대 장안의 화제를 모으며 국민을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들인 외화 '브이(V)'가 바로 그 점을 그리고 있다. 파충류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소재로 한 이 미니 시리즈에서 외계인은 지구를 점령하고 지구인들 앞에서 연설한다. '박수(Applaud)!'라고 쓴 프롬프터(방송 등에서 진행자를 위해 원고내용을 써 놓은 장치)를 들고 외계인들은 자신들이 환영받고 있는 것처럼 거짓으로 생방송 한다.

시트콤의 경우 사정은 더하다. '효과'를 위해 드라마에 없는 방청객 웃음과 박수 더빙이 보태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가 있더라도 방청객의 '웃음과 탄식소리'가 빠진 시트콤은 팥이 빠진 팥빙수 같다. 하지만 동원 방청객도 '진실되게' 잘만 사용하면 시청자 반응을 체크하는 표본 집단으로 삼을 수도 있고 시청률을 예상하는 바로미터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이처럼 관중의 반응은 프로그램 제작진들의 끊임없는 관심사다. 또한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30명 남짓 웃음 효과를 위해 동원된 방청객들의 반응으로 제작진은 웃기도 하고, 때론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제작진들은 왜 그렇게 녹화장 분위기나 웃음 더빙 스튜디오에서 동원 방청객의 반응에 민감한가. 바로 시청률 때문이다. 며칠 전 뇌출혈로 운명을 달리 한 선배 프로듀서를 화장터에서 마지막으로 만나고 우리는 그를 가슴에 묻고 돌아왔다. 마흔을 갓 넘긴 젊은 나이에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난 것이다. 티셔츠 차림으로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떠올리노라면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곱씹어 보면 방송가에서 거의 모든 비극과 희극의 근원엔 시청률이 있다. 어찌 보면 제작진과 시청자 모두에게 '행복과 불행의 원천'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시청률에서 좀 뒤지면 방송사 안팎에서 눈총을 받는다. 그래서 PD는 더 외롭다. 방송을 마친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시청률 검색을 할 때면 대입 합격자 발표를 보듯 가슴이 조여 오기도 한다. 물론 드물게 시청률이 낮아도 소수의 시청자에게서 열렬히 사랑 받고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는 경우도 있다.

마라톤에서 꼴찌 주자의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에게' 한껏 보낸 박수 갈채를 생각해 보자.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재미가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만든 시청률 꼴찌 프로그램에도 박수 갈채를 보냈으면 좋겠다. "그가 지금 괴롭고 고독하지만 위대했다는 걸 알아야 했다." (박완서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중에서)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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