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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다쳐 유감이지만 이곳을 떠나는게 현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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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01년 9월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대 이스라엘 무장봉기)가 시작된 후 발생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의 자살폭탄 공격은 무려 70여차례. 5백명이 넘는 사망자가 났지만 한국인이 부상한 것은 지난달 31일 헤브루대학 폭탄공격에서가 처음이다. 공격을 감행한 하마스의 대변인 마흐무드 이자하(57·사진)를 1일 휴대전화로 단독 인터뷰,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이자하는 이스라엘군의 추적을 피해 전화번호를 시간대마다 바꾸는 바람에 인터뷰는 여러번에 걸쳐 힘겹게 이뤄졌다.

-이번 공격으로 한국인들이 처음으로 다쳤다. 부상 정도가 심해 생사가 불투명하다.공부만 하던 무고한 유학생들이다. 하마스의 입장을 듣고싶다.

"한국인들이 다친 것은 유감이다. 하마스는 한국에 대해 나쁜 감정이 전혀 없다. 한국인을 해칠 의사는 더욱 없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는 이스라엘만을 미워하고 공격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다쳤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인 등 외국인 유학생이 많은 대학 구내를 굳이 공격한 이유는.

"외국인들이 다칠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공격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은 그 어느 곳이나 공격 대상이며 그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 것뿐이다. 그들(이스라엘)에게 교훈이 됐을 것이다."

-그래도 외국인이 희생되면 국제 여론이 나빠지는 등 좋을 일이 없지 않나.

"그전에 왜 외국인들이 전세계 1백80개가 넘는 나라 중 하필 이땅에 머무르느냐고 묻고 싶다. 여기는 '핫 플레이스', 즉 전쟁터다. 전쟁터에서 외국인들이 불의의 희생을 당하는 일은 다반사다."

-한국인을 비롯해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나가란 얘긴가.

"우리는 한국인을 비롯해 외국인을 다 친구로 여긴다. 다만 지금 같은 전시 상황에서 외국인이 이 땅에 머무르려면 뜻하지 않게 죽을 가능성을 무릅써야 한다는 얘기다. 외국인이 이 땅에 사는 건 그의 선택 사항이지만 이 시점에서 그 선택은 '현명치 못하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 땅에서 희생된 외국인 중에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죽은 사람이 훨씬 많다."

-이번 공격은 어떤 의도인가. 공격 직후 '앞으로 이스라엘인 1백명 이상을 죽이겠다'는 성명을 낸 것으로 아는데.

"잘 알다시피 지난달 22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주택가에 1t짜리 대형 폭탄을 떨어뜨려 민간인 14명을 학살했다. 그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이번 공격은 그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다. 앞으로 팔레스타인 사람 한명이 죽임을 당할 때마다 이스라엘인 1백명이 살해될 것이다."

-외신에서 미국 정보 당국이 하마스가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는데.

"미국은 거짓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럴 능력도 그럴 의사도 없다. 세계 최대의 대량살상무기 생산국가인 미국이 그따위 말을 한다는 자체가 우습다. 이번에 우리 아이들을 몰살한 이스라엘의 대형 폭탄도 미제 아닌가. 학살을 지원하는 미국을 강력히 비난한다."

-하마스가 공격하면 이스라엘은 대규모 보복전에 나서 끝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다른 길은 정말 없나.

"이스라엘이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 우리는 다른 선택이 없다. 다만 우리 스스로를 지킬 뿐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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