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처드슨 평양 와달라” … 미, 두 달 전엔 "NO”했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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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국전쟁 중 사망한 미군 유해를 송환하기 위해 방북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 지사(맨 왼쪽)가 유해를 남측으로 옮기기 전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유해가 담긴 상자에 예를 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이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미국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 지사를 평양에 초청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미 오바마 행정부는 당초 “방북에 적합한 시기가 아니다”며 반대했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발표 이후 전향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유엔대표부 한성렬 차석대사는 지난 5월부터 리처드슨 주지사 측과 접촉, “천안함 사건을 포함한 여러 현안에 대해 논의하자”며 그의 평양 방문을 요청했다고 복수의 워싱턴 외교 소식통이 밝혔다. 한 소식통은 “북한 측이 리처드슨에게 ‘평양 방문 시 천안함 사건과 관련, 유화적인 언급이나 유감 표명이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지난해 8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때 억류 여기자 2명을 석방했던 것처럼 리처드슨을 통해 천안함 사건의 국면 전환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리처드슨 주지사는 초청을 받은 후 백악관에 강력한 방북 희망 의사를 전달했으나 이와 관련한 한·미 간 논의 과정에서 한국 측이 반대해 성사되지 않았다. 한국 측은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국제적 압박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 고위 인사가 방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도 이 같은 시각에 동의,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직접 리처드슨 주지사에게 방북을 허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그러나 9일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 발표로 국제사회의 북한 규탄 움직임이 일단락되자 오바마 정부는 천안함 사건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리처드슨 방북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미 정부는 최근 한국 정부에 “계속해서 리처드슨의 방북을 막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천안함 사건을 일단락짓고, 6자회담 이전에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하는 기회로 리처드슨의 방북을 활용할 수 있을지 오바마 행정부는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어 “리처드슨의 방북이 이뤄질 경우 백악관 또는 국무부 관리가 동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또 리처드슨이 방북하면 지난 1월 불법으로 북한에 들어갔다 8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의 석방 문제에도 관여하게 될 것이라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아사히 “미, 한국 천안함 대응 자제 촉구”=한편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18일 “미국과 중국이 한국 정부에 (천안함 침몰사건 관련 대응에) 자제를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중국뿐 아니라 미 정부도 한국의 강경대응 방침에 곤혹스러워했다는 것이다.

아사히 신문은 한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 “한국 정부는 군사방송 재개를 위해 확성기를 11곳에 설치했으나 미국과 중국이 난색을 표시하자 방침을 변경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항공모함이 참가하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도 6월 초 서해에서 실시하기로 했으나 미 정부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이달 중순으로 변경됐다”며 “그러다 결국 이달 말 일본해(동해의 일본 표기)에서 실시하는 훈련에 항공모함을 참가시키는 것으로 결론났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 “유엔 안보리에서도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다른 이사국에 ‘중국에 거부권을 행사하게끔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한편 대북 비난 결의안을 요구하는 한국 측 자세에 곤혹스러운 반응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워싱턴·도쿄=김정욱·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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