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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자들 다시 지갑 닫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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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미국 부유층이 다시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유럽 재정위기로 경기 회복세에 제동이 걸린 데다 주가가 널뛰기를 하면서 불안감이 커진 탓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연말 이후 살아나던 소비도 주춤해지는 모습이다.

민간소비가 위축되면 기업은 투자를 꺼린다. 이는 실업 증가로 이어지고,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소비를 더 줄이는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있다.

톰슨로이터와 미시간대학이 16일(현지시간) 발표한 소비자신뢰지수는 지난달 하순 76에서 7월 초 66.5로 급락했다.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월가의 기대치 74.3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는 앞으로 6개월 후 경기에 대한 소비자의 전망을 반영한 수치다. 지난달엔 2년5개월 만에 최고치로 올라서 소비심리가 회복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불과 보름여 만에 급락한 것이다.

소비심리가 이처럼 빠르게 식어버린 데는 국내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유럽 재정위기가 미국 경기 회복세의 발목을 잡았다. 주가도 급등락을 반복했다. 주가 불안은 특히 부유층의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텍사스 알링턴의 BMW 딜러 로리츠 캐딜락은 “주가가 떨어진다고 부유층의 소비 능력이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그들의 마음은 흔들린다”고 설명했다. 주택가격 하락도 부유층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만들었다.

갤럽에 따르면 연소득 9만 달러 이상 가정의 하루 평균 소비액은 지난 5월 145달러에 달했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3% 늘었다. 지난해 연말부터 주가가 오름세를 타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찾은 부유층이 소비를 늘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6월엔 부유층의 하루 소비액은 119달러로 다시 줄었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이코노미스트 마크 잔디는 “부유층의 소비가 주춤하면서 경기 회복의 모멘텀이 약해졌다”고 평가했다. 미국 상위 5%의 소비는 전체 소비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또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는 소비에서 나온다. 부유층이 씀씀이를 줄이면 민간소비가 줄고, 경제성장에도 큰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서민층의 소비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어 경기회복의 불쏘시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집값이 계속 떨어져 주택담보대출을 갚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소비 위축을 타개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정책금리는 0%로 더 이상 낮출 수도 없다. 소비 진작을 위한 미국 정부의 추가 경기부양책은 의회의 반대로 입안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대를 모았던 미국 주요 기업들의 ‘깜짝’ 실적도 월가 은행들의 부진한 성적표에 밀려 주가 상승세를 지속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앞서 14일 공개된 지난달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회의록에는 “상황이 더 악화하면 추가 경기부양책이 불가피하다”는 FRB 이사들의 의견이 제시됐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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