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제2부 薔薇戰爭제5장 終章:염장은 허공으로 몸을 날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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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상빈(上賓)으로 맞아들이겠다고 내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더냐. 이번 연회도 모두 염장을 위해 연 것인데, 어찌 주빈을 개처럼 무릎걸음으로 기도록 할 수 있단 말인가."

장보고는 소리쳐 말하였다.

"그대는 무릎걸음에서 일어나 걷도록 하라."

"아 아니 되옵니다."

이순행이 소리쳐 말하였다.

"어째서 아니 된다는 것이냐."

장보고가 묻자 이순행이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낭자야심(子野心)이라 하였나이다. 이리의 새끼는 아무리 길을 들이려 해도 야수의 성질을 버리지 못한다는 뜻이나이다."

이리의 새끼.

신의가 없이 배신을 일삼는 염장을 일부러 모욕하여 이르는 말이었다. 그러자 장보고가 일부러 자리에서 일어나 상좌를 비워주며 말하였다.

"그대는 내게 있어 상객이니 이리 와서 앉도록 하시오."

염장이 무릎걸음으로 기어오자 장보고가 다가가서 손수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면서 말하였다.

"어리석은 부하의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오."

염장이 몇 번을 사양한 후 정좌하자 곧 연회가 시작되었다. 사기에 기록된 대로 권커니 작커니 술을 나눠 마시며 환락을 다하는 흥겨운 잔치였다. 염장은 자신이 목적하는 바가 있었으므로 조심스럽게 술을 마셨으나 장보고를 비롯한 모든 군장들은 분위기에 취해 곧 대취하고 말았다.

한바탕 술자리가 무르익자 마침내 때가 왔음을 안 염장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대사 나으리."

염장이 품속에서 피리를 꺼내들고 말하였다.

"신이 배운 것은 없어도 일찍부터 피리 하나는 조금 불어 왔었나이다. 이처럼 변변치 않은 소인을 위해 성대한 주연을 베풀어 주셨으니, 신이 보답하여 대사 나으리께 산조 한 수를 불러드리겠나이다."

염장이 말하자 장보고는 기뻐서 박수를 치며 말하였다.

"그대의 명성은 익히 전해 듣고 있소이다. 그러니 어서 한 곡조 들려주시오."

염장은 피리를 불기 시작하였다. 원래 피리로는 시나위만 불렀지, 진양이나 중모리의 가락은 연주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염장은 피리의 명인답게 구성지게 산조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가 연주하고 있는 노래는 무등산곡. 옛 백제인들이 무등산에 성을 쌓을 때 태평성대를 누리며 즐겨 불렀다는 전설속의 그 노래였던 것이다.

구성진 피리소리가 흘러나오자 곧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장보고는 눈을 감고 염장이 연주하는 피리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피리를 불면서도 면밀하게 주위를 살피던 염장은 마침내 기다리던 때가 왔음을 알았다. 주연은 파장에 가까워 참석하였던 모든 사람들은 거의 모두 인사불성에 가까울 정도로 대취하여 있었다. 장보고도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술에 취해 비스듬히 몸을 기울인 채 앉아 있었다.

단 한번, 단칼에 장보고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염장은 피리를 불면서 생각하였다.

장보고 주위에는 오직 한 사람 이순행만이 완전한 군장을 한 채 술 좌석을 지키며 호위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장보고의 가슴을 찔러 살해하는 순간 이순행의 목숨까지 동시에 빼앗아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번 거사는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피리를 불던 염장이 마침내 조심스레 설을 뽑아 들었다.

설을 뽑아 내리자 날카로운 칼이 나타났다.

거의 동시에 앉아있던 염장의 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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