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쇄신’ 외치면서 ‘쇄신 대표’ 외면한 초선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1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지도부 입성에 실패한 뒤 초선의 김성식 후보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당 대표 경선에서 그는 665표(전체 유효 득표의 3.1%, 여론조사 132표, 대의원 533표)를 얻어 11명 중 10등에 그쳤다.

‘초계파 쇄신 대표’를 표방한 그는 전당대회 연설에서 “거대한 계파의 벽을 넘게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벽은 너무 ‘거대했다’. 그 벽은 5등까지 주어지는 최고위원을 4명의 친이계(안상수·홍준표·나경원·정두언 의원)와 1명의 친박계(서병수 의원)에게만 허락했다.

이런 결과를 두고 당 안팎에선 “조직력의 승리” “‘오더(지시) 투표’의 위력”이라는 말이 나온다. 1인 2표제에서 두 번째 표까지 단속한 각 계파의 힘이 발휘됐다는 얘기다. 김 의원을 도왔던 초선의 박영아 의원은 “처음엔 안 그랬는데 경선이 치열해질수록 오히려 여유가 없어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모든 후보가 말로는 “통합과 쇄신”을 외쳤지만 김 의원 같은 무계파 초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애초부터 없었던 셈이다.

문제는 ‘김성식의 좌절’이 그 혼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이 6월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뒤 당에선 쇄신 주장이 들끓었다. 특히 계파를 초월한 초선 의원 51명이 당·정·청 쇄신을 요구하는 연판장에 서명했다. 그 선두에 김 의원이 있었다. 통상 의원 한 명에겐 15~34명, 평균 20여 명의 대의원이 배정된다. 의원 51명의 대의원 표를 단순 합산할 때 1000표 이상은 된다. 그런데 김 의원은 고작 533표를 얻었다. 김 의원은 “당초 돕기로 했던 20명의 초선들은 약속을 지켜 533표를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쇄신을 외쳤던 51명의 초선들이 정말 ‘쇄신’에 표를 던졌다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한나라당 초선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하는 쇄신이 왜 국민들에게 통하지 않는지 그 이유가 이번에 드러난 셈이다.

김 의원은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10위(2.07%)에 그쳤다. 그는 “대중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했지만 대중성은 거저 생기는 게 아니다.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의 진정성이 대중에게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이 바람을 일으키는 법이다. 한나라당에서 쇄신을 말하는 이들이 ‘김성식의 좌절’을 진짜로 곱씹지 않는 한 그들에게 쇄신은 영원히 잡히지 않을 신기루일 것이다. 

허진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