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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미니시리즈 '거침없는 사랑' 출연 조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남자가 울 땐 당황스럽고 애처롭다. 강하게 단련된 남성(男性)을 훌훌 벗고 두 줄기 눈물을 뿜어대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런 면에서 탤런트 조민기(36·사진)의 눈물은 좀 다르다. KBS 미니시리즈 '거침없는 사랑'에서 그가 연신 흘리는 눈물은 추하지도 거부감이 들지도 않는다. 그저 안타깝고 같이 가슴이 아플 뿐이다. 사랑하는 여인과 아내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 남자에게 시청자들은 돌팔매질을 하는 대신 한없는 동정을 느꼈다.

"지금처럼 많이 울어본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 대본만 읽어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찡해요. 원래 눈물이 별로 없었는데…. 아무래도 작가의 글이 너무 좋아서 그런가봐요." 순전히 대본이 좋은 결과라며 겸손해하지만 내심 시청자들의 반응이 싫지 않은 표정이다.

그간 TV에 나타난 그의 이미지는 차갑거나 발랄했다. 미니시리즈 '천사의 키스'에서는 비열한 악마 역으로 욕도 많이 먹었고, 일일극 '온달 왕자들'에선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철부지 같아 보였다. 그는 눈물 흘리는 남자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엔 최루성 연기를 하고 나섰다.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한 아픔 때문에 가정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애쓰다가 아이로니컬하게도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한정환 역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눈물이 말라가요. 연기할 때 대본에 우는 장면이 나와도 눈물이 안나오면 억지로 울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이상해요. 얘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의 말처럼 그는 극 속에서 시도때도 없이 울었다. 병실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 "바람 핀 아버지를 이해할 것 같다"고 서글피 울고 사랑하는 여자의 어머니에게 "단 하루만이라도 그녀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절규하며 울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팠다.

조민기는 연기에 욕심이 많은 배우다. 매번 드라마를 마친 후엔 녹화해둔 테이프를 다시 보면서 자신의 연기에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는 원리원칙주의자이기도 하다. 드라마 촬영 도중엔 절대 CF를 찍지 않는다. "내가 맡은 역할이 CF 속에 뛰어들어 딴짓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란다.

드라마가 끝난 뒤엔 으레 가족과 여행을 떠났던 그는 이번에는 그냥 집에서 쉬기로 했다. "여행을 가면 지금의 느낌들이 모두 날아갈까봐 겁이 나요." 오랜만에 좋은 작품을 했다는 뿌듯함이 그의 마음 속을 가득 채운 듯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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