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사무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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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투명'이란 속까지 환히 비치도록 맑다는 뜻이다. 사람의 말이나 태도, 또는 펼쳐진 상황 따위가 분명할 때 '투명하다'고 표현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 단어의 사용빈도가 꽤 늘어났다. 정부 행정이나 정치 및 기업활동에서 감춰진 꺼림칙한 일들이 속속 드러나고 각 분야에 걸쳐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되면서 공정성·윤리성과 함께 투명성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커졌다. 있는 문제점들을 모두 끌어내 논의, 개선해 나가면서 국민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생활용품 가운데 내부가 보이는 투명 상품들이 줄을 잇고 있다. 각종 미세한 부속품의 작동상태까지 눈여겨 볼 수 있는 투명 오디오 제품뿐 아니라 투명 시계, 투명 비누까지 등장했다. 상품 차별화의 포인트도 투명에 있다.

이달 초부터 업무를 시작한 민선 3기 자치단체장들의 행정 스타일이 여러가지다. 대부분 단체장들의 주안점은 투명행정에 있다. 이를 집행하는 톡톡 튀는 행보가 눈길을 끈다. 전남 순천과 나주, 경남 고성과 거창·산청 등의 시장 및 군수들 집무실은 벽면이 투명한 유리로 바뀌었거나 청사 1층 현관 옆으로 옮겨졌다. 대전시는 매주 한차례 확대간부회의를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이 서둘러 만든 투명 사무실은 '우리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겠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행정의 초점 역시 투명에 맞추어진건 수많은 비리 사건들의 후유증 때문이다. 민선 2기 단체장 2백48명 중 뇌물수수·선거법 위반 등 각종 범법행위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 인물이 무려 54명이나 된다. 1기 때의 21명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났다. 이밖에 각종 공사와 인사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지역 유권자들이 단체장들을 보는 부정적 시각을 바꿔주기 위해 응급처방으로 투명 사무실을 활용하는 느낌이다.

각 지자체의 '유리알 행정'은 반년 또는 1년 이내에 이뤄질 일은 못된다. 서울시 투명행정의 실천 사례로 그동안 높이 평가받았던 민원처리 온라인 시스템, 클린 신고센터, 청렴계약제 등은 아시아 여러 나라뿐 아니라 선진국에서조차 반부패 대책으로 관심을 보여 왔다. 서울시가 그러했듯 일부 지자체들이 복마전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도 팔을 걷어 붙이고 '청정(淸淨)마을'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주민감사청구제도 활용 등 적극적인 감시체제가 필요하다. 투명 사무실 운영이 전시 행사로 끝나서는 안된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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