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제2부 薔薇戰爭제5장 終章:"그대의 철천지 원수가 남았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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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하룻밤을 꼬박 세운 김양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심복 부하 염장을 불러들였다. 염장은 그날 밤 남의 눈을 피해 김양의 집으로 숨어들었다.

"부르셨습니까, 나으리."

염장은 자신의 추악한 용모 때문에 아직도 남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다니기를 즐겨하고 있었다. 염장은 큰 무공을 세운 공신으로 시위부의 군장이 되어 있었다. 시위부는 국왕을 호위하는 목적을 지닌 정예군으로 병부령이었던 김양이 염장을 시위부의 군장으로 임명하였던 것은 그에 대한 각별한 총애 때문이었다.

"나으리,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김양을 바라보는 염장의 눈빛에는 충성심이 넘치고 있었다.

"내 그대를 부른 것은 오랜만에 그대가 부르는 피리소리를 듣기 위함이오."

김양은 잘 알고 있었다.

염장이 한 때 해적으로 노예를 팔아 넘기던 인간백정이었으나 또한 신라 제일의 피리명인이었음을.

"갑자기 신에게 피리를 불라니요."

염장은 항상 검이 꽂혀있는 피리를 들고 다니고 있어 때로는 살상용 패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악기용 피리가 되기도 하였다.

"오랜만에 무등산곡을 듣고 싶소이다."

무등산곡.

예부터 무등산에 산성을 쌓았던 백제인들이 태평성대를 누리며 불렀다던 전설 속에 나오던 바로 그 노래. 몇번을 사양하던 염장은 마침내 피리를 불기 시작하였다. 염장이 부는 피리소리는 달빛을 타고 온누리에 번져나갔다. 눈을 감고 피리소리를 듣고 있던 김양은 염장이 연주를 끝내자 자신이 마시던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내밀면서 말하였다.

"수고 많이 하였소이다. 한잔 드시오."

염장은 두 손으로 술잔을 받아 돌아 앉아 마셨다. 술을 마시고나서 염장이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이 야심한 밤에 어찌하여 신을 부르셨습니까."

김양이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오랜만에 그대가 부르는 피리소리를 듣기 위해 불렀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소."

그러나 염장이 머리를 흔들며 말하였다.

"아닙니다. 단지 그뿐이실 리가 없나이다."

그러자 김양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귀신은 속일 수 있어도 그대만은 감히 속일 수가 없구료. 그렇소. 내가 그대를 보고자 부른 것은 원수를 갚기 위함이오. 일찍이 공자가 이르기를 '평생을 거적자리에서 잠자고, 방패로 베개를 삼더라도 원수 갚을 마음을 한시라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원수와는 같은 조정에서 일을 할 수도 없을 것이며, 이 세상에 함께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그 원수를 시장 한 가운데에서 만나면 되돌아서지 말고 병기를 가지고 싸워 죽여야 할 것이다'하였소이다. 마찬가지로 함께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는 원수가 하나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똑같은 질문이었다.

4년 전. 김명을 죽이기 위해서 은밀히 염장을 불렀을 때에도 김양은 똑같은 질문을 하지 아니 하였던가. 그 때 염장은 대답하였었다.

"반드시 죽여야 하나이다."

염장은 김양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김양이 자신을 자객으로 고용하고 있음을. 그러나 똑같은 질문을 던져온 것에 대해 염장은 의아한 목소리로 물어 말하였다.

"나으리의 함께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는 원수는 이미 죽지 않았습니까. 이미 원수를 갚았는데, 어찌하여 또 다른 원수가 남아 있다는 말씀이시나이까."

염장의 질문은 정확하였다.

주인 김양의 원수는 오직 한사람. 그것은 사기에 기록된 대로 백일을 두고 복수를 맹세하였던 김명이 아니었던가. 그 김명은 이미 죽어 복수는 끝나지 아니하였던가.

그러자 김양이 머리를 흔들며 말하였다.

"또 다른 원수가 아직 남아있소이다. 그것은 내 원수가 아니라 바로 그대의 철천지 원수인 것이오."

김양은 손가락을 들어 염장의 가슴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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