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정치인 문광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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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혹시나 했더니…."

11일 문화관광부 장관에 김성재(金聖在)학술진흥재단이사장이 임명됐다는 소식을 들은 직원들의 반응이다. 문화관광부에서 특히 뚜렷했던 역대장관 임명의 낙하산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다. 문광부의 모태는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출발한 공보처며, 문화와 공보 기능을 묶은 문화공보부로 재탄생한 것이 68년이다. 이름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54년간 모두 39명의 장관을 배출했다. 그 가운데 차관에서 승진한 경우는 꼭 두 사람에 불과하다. 두 경우는 모두 현대정치사의 사건과 직결돼 있다.

하나는 80년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탄생한 계기가 된 5·17 비상계엄확대 직후인 5월 22일 임명된 이광표 장관이며, 다른 하나는 박정희 정권이 탄생한 계기인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62년 6월 18일 임명된 이원우 장관이다. 쿠데타 직후 갑작스런 전면개각을 단행하면서 차관을 자동으로 장관으로 올려 임명한 경우가 꼭 두번의 예외에 해당된다.

나머지 대부분의 장관은 정치적 고려에 의한 임명이었다. 현정부 들어선 신낙균-박지원-김한길-남궁진 장관의 순서다. 모두 민주당 사람들이다. 현재 신낙균 전장관은 민주당 고문이며, 박지원 전장관은 이번 개각을 발표한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김한길·남궁진 전 장관은 모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위해 장관직을 사퇴한 전직 민주당 국회의원이자 전직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다.

김성재 신임장관 역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 출신이다. 한신대를 졸업한 목사로 기독교계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문광부 주요업무인 문화·관광·체육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기 힘든 경력이다. 굳이 인연을 찾자면 문화분야 가운데 종교가 관련되는 정도다. 그러나 불교·천주교와 민족종교까지 끌어안고 가야하는 종교 주무장관에 개신교 목사·신학자가 얼마나 적임인지도 의문이다.

문광부 장관 자리를 정치인들이 탐내는 것은 당연하다. 문광부 장관은 각계 각층의 유명인사들을 만나면서 정부예산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업무의 대부분이다. 정치인에겐 자기 돈 안쓰고 선거운동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문화관련 행정이 점점 복잡해져가는 21세기, 문광부에도 전문가 장관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 신임 장관이 최대한 누릴 재임기간은 겨우 5개월여. 업무파악하기에도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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