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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영원한 승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002 월드컵도 끝나고, 히딩크도 떠났다. 23명의 태극전사들도 뿔뿔이 흩어져 소속팀으로 돌아갔다. 세계가 놀라고, 우리 자신도 놀랐던 '붉은 악마'의 열정도 호리병에 다시 갇힌 아라비안 나이트의 거인처럼 각자 마음 한 켠 깊숙이 모습을 감추었다.

여기저기서 들뜬 기분에서 벗어나 차분한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붉은 악마 티셔츠도 얌전히 개켜 장롱 속에 넣어두자는 광고까지 나왔다. 맞다. 언제까지 월드컵 승전보만을 노래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런데도 나는 선뜻 내키지 않는다. 좋았던 기억들이 사라질까봐 겁이 나서다. 탄성을 지르게 한 박지성 선수의 멋진 슛이나 웃음을 터뜨리게 한 오노 세리머니에 대한 기억이 아니다. 경기장 밖에서 펼쳤던 우리들의 풍경 때문이다. 시청 앞 광장은 물론 인근 골목까지 사람으로 넘쳐나는 와중에도 목좋은 자리의 임자가 장시간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넘보지 않던 것을 말하느냐고? 천만에. 내가 정말 감격했던 '월드컵의 순간'은 따로 있다.

그 하나.

스페인과 시합을 앞두고 있을 무렵 은퇴한 언론계 선배들과 함께 점심을 했다. 노 선배들은 많은 인파가 오랜 시간 동안 질서 정연하게 거리 응원을 펼치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며 결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어제도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다들 말했지. 우리도 여태까지처럼 뭐든 보고도 못본 척, 알고도 모른 척 지나치지 말자고. 사회가 바르게 발전하도록 힘을 보태자고 말이야."

그 둘.

스페인이 어려운 상대인가, 이탈리아가 어려운 상대인가를 놓고 해설에 열을 올리던 택시 기사가 차선 위반을 하는 차량을 보더니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아니, 지금도 저런 짓을 하다니 !" 여차하면 쫓아가 훈수까지 둘 기세여서 갈 길을 핑계삼아 만류했다. "요즘 정말 달라졌어요. 무리하게 끼어들거나 앞지르기 하는 차를 쫓아가 '우리가 어떤 국민인데,이런 짓을 하면 됩니까?'하면 다 해결되죠." 택시 기사는 시비가 일 것을 염려하는 내게 쓸데없는 걱정도 다 한다는 투로 쐐기까지 박았다. "고급차든 아니든 다 같아요. 열이면 열, 모두 '죄송합니다'하고 고개를 숙이죠." 그 순간 택시 기사 얼굴에 하나 가득 피어오르던 자랑스러움이란.

그 셋.

10여년 만에 대학의 과 입학동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뒤풀이격인 국민축제가 끝난 다음인지라 자연 월드컵이 화제였다. 자영업자인 한 친구가 물었다. "히딩크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것을 하나만 든다면 뭐라고 생각해 ?" 누군가 대답했다."연고주의 파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무슨 일이든 진짜 실력으로 승부하면서 살아가야 해." 학연으로 뭉친 자리에서 우리는 모두 '비연고주의 실천'을 다짐하는 축배를 들었다.

월드컵에서 이어진 코리안 리그의 축구 열기를 두고 1998 프랑스 월드컵의 예를 들어 '한 달 짜리'일 것이라느니, 88서울올림픽처럼 2002 월드컵에서 발휘된 시민의식도 일시적일 것이라는 진단이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 우리네 특유의 '쏠림 현상'과 위기에 강한 특성이 합쳐져 일군 일시적 성과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 88서울올림픽과 2002 월드컵간에 놓인 14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차치하더라도 나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동원된 관중과 자발적 참여자가 만들어낸 문화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세대와 성을 뛰어넘어 온 국민이 '진정한 승자'라는 소중한 경험을 맛보지 않았던가.

히딩크는 떠나고 붉은 악마 티셔츠는 장롱 속에 잠들어 있지만 히딩크와 붉은 악마가 일깨운 우리들의 의식 혁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것이 오직 나만의 환상이라 하더라도.'월드컵의 영원한 승자'가 되기를 꿈꾸는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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