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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투자한다던 허풍선이에 속아 개발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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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똑똑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스마트 펀드’. 주가(또는 지수)가 떨어지면 그 폭에 따라 정해진 양만큼 자동으로 주식을 사고 오르면 파는 펀드다. 쉽게 말해 싸다 싶으며 사고 올랐다 싶으면 파는 펀드다. 큰 수익을 내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게 주목적이다. 특히 올해처럼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할 때 실력을 발휘하게 설계돼 최근 증권사들이 앞다퉈 스마트 펀드를 내놓고 있다.

이런 스마트 펀드의 매매 방식을 창안한 ‘스마트 펀드의 원조’가 있다. 우리투자증권 조영호(32·사진) 과장이다. 계기는 2003년 신입사원 시절 서울 송파구의 한 지점에서 일하다 우연하게 만난 한 고객이다. 한 투자자가 “100억원을 맡기고 싶다”며 그를 찾아왔다. 그 투자자는 “큰 수익보다는 안정성을 원한다”고 했다. 고민 끝에 주가지수의 하락 폭을 정해 놓고, 그에 맞춰 주식을 사고파는 방법을 고안했다. 바로 스마트 펀드의 매매 방식이다. 자칭 ‘100억 자산가’에게 이를 설명했다. 곧 돈을 들고 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증권가를 돌아다니며 고액 자산가 행세를 하고 대접받기를 즐기는 허풍선이였다.

“실망이 컸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허풍선이가 원하는 게 많은 투자자가 바라는 투자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죠. 메커니즘을 더 가다듬었습니다.”

수년에 걸쳐 투자방법을 계속 다듬었다. 실제 수익을 얼마나 내는지 모의실험도 했다. 2005년 10월에 투자했다면, 3년 뒤 26.4% 수익을 내게 된다는 게 조 과장의 설명.

2008년 8월에는 특허도 냈다. 해외의 펀드회사로부터 상품화 제안도 받았다. 그러나 몸담은 회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대신 우리투자증권이 이달 초 ‘스마트 인베스터’라는 이름으로 조 과장이 창안한 방식의 스마트 펀드를 출시했다. ‘스마트 인베스터’는 조 과장이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 글을 올릴 때 쓰는 닉네임이다. 이 펀드를 굴리는 우리자산운용으로부터 특허료를 받고 있다. 그는 “특허료가 그리 많지는 않다”며 웃었다.

그는 스마트 펀드에 대해 “강한 상승장에서는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공격적 투자 성향을 가진 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안정성’을 중시하는 투자자들에게 적합한 펀드라는 설명이다.

조 과장의 아이디어를 놓고 현재 지식재산권 분쟁이 벌어져 있다. 다른 증권사가 내놓은 스마트 펀드에 대해 특허권 침해 여부를 판정해 달라고 특허심판원에 요청한 상태다. 상대 증권사는 “조 과장의 특허는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것이고, 우리 상품은 개별 주식까지 포함한 것이라 차이가 많다”며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 과장은 “더 새로운 아이디어의 펀드를 만들어 금융 선진국에 아이디어를 수출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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