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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증시 안정돼야 환율 정상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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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원-달러 환율이 1천2백원선을 단숨에 깨고 내려간 8일 서울 외환시장의 딜러들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가파르게 떨어질 줄은 몰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환율은 국내외 거시경제의 큰 흐름보다 미국 증시의 등락에 좌지우지돼 합리적인 예측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연합(EU)·동남아 주요국들의 환율이 동시에 떨어져 수출경쟁력 약화를 어느 정도 희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달러표시 가격으로 열심히 수출해 봐야 원화로 바꿔 손에 쥐게 되는 돈은 줄어든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수익성은 나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화 가치 왜 오르나=달러 가치가 세계 각국 통화에 대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데 따른 현상이다. 최근 3개월간 원·엔·유로화 등의 가치는 달러화에 대해 10% 정도씩 일제히 올랐다.

<그래프 참조>

달러 약세의 원인은 ▶예상보다 더딘 미국 경제의 회복▶미국 기업들의 잇따른 회계부정과 수익성 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투자자금은 미국 금융시장에 등을 돌리고 있다.

국제 자금은 미국 시장에 지난해 4분기 중 1천5백억달러 가량 흘러들어갔지만, 올 1분기에는 9백90억달러로 줄어들더니 2분기엔 5백억달러 이하로 뚝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최근 미 기업들의 회계부정이 잇따르자 국제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을 찾아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이다. 한국 증시에도 이달 들어서만 7천억원 가까운 외국인 투자자금이 몰렸다.

달러화가 일방적으로 '왕따'를 당하다 보니 과거와 같은 선진국 외환당국 간의 공조체제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EU와 일본 외환당국은 달러가치 방어에 공조해 봐야 국제 환투기 세력에 수익만 안겨줄 것으로 보고 일단 흐름을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어디까지 오를까=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1천2백원선 위로 되오르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금융연구원 장원창 연구위원은 "미국의 금융시스템과 경기 전망에 대한 불안감이 깊어져 적어도 3분기 중에는 달러약세 흐름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시장 개입에 나서는 일부 국책은행을 제외하고는 달러사자 주문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단기적으로 1천1백80원선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일단 미 증시가 안정을 되찾아야 환율도 예측 가능한 정상 흐름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원화강세는 수입을 많이 하거나 달러 빚이 많은 기업들엔 호재가 된다. 또 유학생 자녀를 둔 사람들은 똑같은 돈으로 보다 많은 달러를 보낼 수 있고, 수입물가가 떨어져 국내 물가가 안정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수출엔 큰 악재다.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연구위원은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의 소비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역흑자가 줄어들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중국의 위안화는 고정환율을 유지하고 있어 중국과 경합하는 경공업 분야의 국내 중소 수출업체들은 큰 타격이 우려된다.

김광기·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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