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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재즈드러머 몸으로 '문화' 보여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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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문화관광부 문화콘텐츠진흥과 용호성(35)사무관이 문화부 관리로서 갖는 지론은 간단하다. 국민이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는 대답을 말 대신 몸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일과가 끝난 그를 쫓아가보니 그의 대답을 '볼 수' 있었다.

4일 PM 5:50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보고서 끝부분 좀 다듬고요."

4일 서울 광화문 문화관광부 8층 사무실. 저녁 특유의 나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데 이 사람, 연달아 울리는 전화 받으랴, 업무회의 자료 완성하랴, 서류 결재하랴 정신이 없다. 그는 초조하다.6일 대학로에서 할 재즈 공연을 앞두고 오후 8시로 잡은 팀원들과의 연습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평소엔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오후 10시나 11시 퇴근하기 일쑤지만 요 며칠간은 연습 때문에 6시에 '칼퇴근'을 하고 있다. 그러면 남은 일은 어떡하냐고? 해답은 간단했다."새벽에 나와 일하면 됩니다."

PM 6:30

편한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홍은동 집까지 가는 택시 안. 그는 연주단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악기 옮기는 작업은 잘돼 가는지, 극장 상태는 괜찮은지 연신 체크한다. 그가 소속된 팀은 인터넷 재즈 동아리 '프리톤(www.freetone.co.kr)'의 소모임 '재스터로이드'. '프리톤'은 지난 5년간 3개월에 한번씩 재즈 카페에서 공연을 가졌다. 이번엔 재즈 카페가 아닌 정식 공연장을 택했다. 그냥 음악이 좋아 연주하던 이들이 '세상 밖으로' 뽐내기를 하러 나온 것이다.

PM 7:10

잠실에 있는 연습장소에 8시까지 닿기 위해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보지만 퇴근 시간 강변북로는 몰려드는 차량들로 속도를 낼 수 없다. 짜증을 음악으로 달래볼까. 차 안을 휘감는 것은 역시나 재즈다. 용사무관은 재즈를 다른 음악에 비해 늦게 접했다. 고교 시절에도 록·클래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했지만 재즈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1990년 구경갔던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 재즈 연주자 조지 가와구치를 보고는 망치에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60세에 하얀 콧수염을 기른 이 드러머의 열정적인 연주 장면을 보며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당시 재즈는 이태원의 '올 댓 재즈' 같은 카페 외에는 공연하는 데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재즈드럼 배우기도 수월하지 않았죠. 그냥 일반 드럼을 배우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가 본격적으로 재즈드럼을 배운 것은 96년 미국에서 2년간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이었다.

용사무관은 올해가 11년차다. 행시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 후 당시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던 문화부를 선뜻 자원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공무원 일이 적성에 잘 맞아요. 무엇을 규제하는 게 아니라 잘 되도록 아이디어를 내고 옆에서 도와주니까요. 문화관광부의 열린 분위기가 뒷받침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PM 9:30

지금부터 '숨쉬는 시간'이다.8시30분쯤부터 하나둘 모여든 '재스터로이드' 멤버 7명. 이들은 목요일 밤의 세시간을 "일주일 중 유일하게 숨쉬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재스터로이드'는 1년반 된 소모임이다. 재즈 동아리 '프리톤'에는 서너개의 소그룹 재즈연주단이 있는데 대부분 1~2년을 주기로 생성·소멸을 반복한다.'재스터로이드' 멤버들은 다른 팀과 달리 아마추어 연주자로만 구성됐다. 그래서 "우리가 실력이 제일 처진다"며 연습을 두배로 하는 열성을 보인다.

테너색소폰을 부는 팀장 구태용(37·정형외과 의사)씨를 비롯해 바리톤 색소폰의 김성일(34·인터넷 서버 설계)·베이스 박재훈(31·게임 프로그래머)·알토 색소폰 진승환(29·프로그래머)·보컬 정재연(29·음악치료사)·키보드 하근희(29·LG 연구소)씨는 모두 생업을 갖고 있다.

"원-, 투-, 원투스리 포 ! "

팀장의 구호에 맞춰 즉석 연주가 시작됐다. 공연 마지막곡으로 준비한 지미 스미스의 '백 앳 더 치킨 세이크'에 가서는 호흡이 척척 들어맞았다. 어느 합주나 그러하듯 연주는 손발이 잘 맞아야 상승효과가 생기는 법이다. 베이스 기타가 심장 박동처럼 울려주면 드럼은 혈관에 피를 공급하듯 기본 리듬을 깔아준다. 이어 삼색 색소폰이 각자의 음역에서 자유로이 넘나들면 보컬의 목소리가 반주를 타고 물흐르듯 흐른다. 연주의 절정은 이렇듯 멤버들이 하나가 될 때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것은 일종의 열반 상태다.

AM 0:20

재즈 선율은 지하 연습실의 퀴퀴한 냄새를 압도했다. 연습은 끝났다. 이제 이틀 후 공연만 남았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드러머 용사무관은 집에 가서 할 일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다."일주일에 세번 인터넷에 재즈 방송국을 열어요. 오늘은 청취자에게 오늘 연주한 곡의 원곡을 들려주며 얘기를 나눌까 해요." 그는 잠자면서도 재즈와 이야기를 할 것 같다.

6일 PM 9:30

공연이 끝났다. 3백50석 좌석이 모자라 보조의자까지 동이 났다. 멤버들 모두 흥에 취해 시원한 맥주잔을 거푸 비워냈다. "저희 앞으로 매년 한번씩 이런 공연을 할 겁니다." 용사무관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에겐 악기를 옮길 책임이 남아 있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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