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일상에 메스를 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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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로서 이미 매니어층을 거느린 소설가 이응준(32)씨. 그가 시집을 냈다. 등단은 시로 했으니 원점 회귀인가. 아니다. 현대적인 것들의 아득함 속에서 헤매던 그의 소설이 1막, 2막, 3막이었다면 시집은 막전막후(幕前幕後)의 풍경을 그리며 함께 가고 있다.

다시 현대적인 것으로 돌아오자. 현대적이란 무엇일까. 아니, 이 시인은 무엇이라 생각했을까. 그것은 까닭 모를 공포, 이유없는 배반이 아니었을까. 보들레르까지 돌아가보면 현대의 특징은 지루한 나날(월드컵을 제외하고)의 영겁회귀, 매일 똑같은 일(집-회사-집)의 반복, 그리고 비어가는 마음.

이 때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람. 마냥 퇴폐적인 몸짓으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거나 육체에 각인된 고통을 어둠 속에서 맞대면서 하는 일, 그러니까 위악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난타와의 장거리 경주』는 그런 어두운 현대의 풍경 속에 자리한 자신에게 "악!" 소리를 내지르는 시집이다.

"나는 비로소 고백한다. 내가/싫어했던 것은/고요하고 흠결 없는 그가 아니라//얼마나 더 어두워야 하는지/얼마나 더 밑으로 가라앉아야 하는지 알 수 없던/내 소음으로 가득 찬 이십대였다는 걸.//나여. 이제/피도 흘리지 못하는 불행한 전생은/치르지 말자."('백야' 중)

아파트 숲에서 자란 아스팔트 킨트들에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계절의 순환은 사실 아름답고 말고 할 것이 없다. 서정과 낭만의 시대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과 다름없다는 게 그들이다. 붕붕거리는 자동차의 매캐한 매연과 잿빛 하늘 아래 "나 살아있구나"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자동차나 TV처럼 마냥 앞으로 돌격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다 지쳐 돌아서면, 흉기를 들고 자신에게 향한다.

"마주본다//바람에 금이 간 뺨.//서걱이는 모래눈물.//썩은 감자 같은 발굽에/밟히는 분노여.//우리, 하필/이 별에서,//낙타가 되다니."('우리' 전문)

돌진적 현대의 특성은 조로(早老)다. 조로는 기억 속에서만 청춘을 산다. 벌써 "스무살에 부르던 투쟁가처럼 꽃이 핀다/그러나 꽃을 노래하지는 말아라/괴로운 건 꽃이 아니다/…/멍들어 가는/청춘이다"라고 말한다.

혼돈을 증거하는 사태 앞에 시인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다만 무엇을 바라는지 몇 마디만 내비친다. "내가 진정 바랐던 것은/사랑이라든가 자비가 아니라/일목요연이었는지도 몰라."('암흑시' 중)

너무 위악적이라는 의심이 든다면? 혹시 그게 시인의 의도 아니었을까. 위선보다 위악에서 진실을 포착하자는 제안. 그러나 진위 판별은 불가능하다. 가슴에 손을 얹어 보는 수밖에.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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