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돌 보기를 金 보듯 '25년 돌사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세중 돌박물관' 주인 천신일(千信一·59)씨는 오래된 돌조각만 보면 사모으는 석물(石物)수집광이다. 지난해엔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가져간 돌조각을 일본까지 달려가 사오더니만 지난 6월 중순엔 그 돌조각의 일부를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돌조각을 잘 연구하고 보존해 달라"는 뜻으로 돈 1억원까지 같이 내놓았다. 정부로부터 훈장(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을 만도 했다.

천씨는 지난달 28일 경복궁 내 민속박물관 앞마당에서 자신이 애지중지해 온 문인석(文人石·문신 모습의 돌조각) 20점과 동자석(童子石·아이 모양의 돌조각) 4점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궁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서 훈장을 받았다. 별 말 없이 씩 웃는 천씨의 모습이 일본에서 돌아왔다는 돌조각을 닮았다. 수억원을 들여 일본에서 사들여온 돌조각을 기증한 소감을 묻자 겨우 몇마디 한다.

"용인(세중 돌박물관)에 많이 있는데 너무 머니까 서울 시내 한가운데에 좀 가져다 두고 자주 보자는 거지요. 나도 자주 와서 보기 쉽고…."

그가 모으는 돌조각은 문인석·동자석 외에 무인석(武人石·무신 모양의 돌조각)이나 벅수(마을의 수호신이나 이정표 삼아 길 가에 세워두는 석상) 등인데, 모두 화강암으로 만든 우리 전통 석물들이다. 문인석·무인석 등은 특히 왕족이나 사대부의 무덤을 지키는 호위석으로 대부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저 무표정하고 그로테스크한 낡은 돌덩어리'에 왜 그렇게 빠져들었을까.

"좋아하는 데도 이유가 있습니까?"

짧게 반문하고 웃는다. 한참 뒤에야 "처음에는 백자에 미쳤는데, 나중에 돌을 보니까 '바로 이거구나' 싶더군요. 문화재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돌에 많이 빠진다고 하데요"라고 덧붙인다.

'세중 여행사''세중 엔지니어링' 등을 운영하는 중견사업가인 천씨는 젊은 시절 백자를 좋아했다고 한다. 1970년대초 "구경이나 하라"며 누군가 두고 간 백자를 무심히 보다가 '백자가 뭔가 알아보자'는 호기심이 발동, 당대의 감식안을 자랑하던 김상옥(金相沃·83·시조 시인)선생을 찾아 나선 것이 문화재 입문 첫걸음이었다. 물론 들고 간 백자는 가짜였고, 그 순간 천씨는 '진짜 백자를 알아보는 눈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백자만 사모으고 닦고 보고 연구하길 5~6년, 인사동 골동품 가게를 안방처럼 드나들던 78년 우연히 돌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친하게 지내던 한 골동상이 일본인에게 돌조각 사진을 보여주며 흥정하는 것을 보고는 "일본에 팔려나간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들을 몽땅 사버렸다. 사놓고 보면서 돌에 대한 안목도 트이기 시작했다.

이후 돌조각 6천점을 모아 2000년 용인군 양지면에 돌박물관을 연 것이다. 석물이 대부분 묘지를 지키는 돌이기에 도난품이 나돌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니 수집과정에서 오해도 많았고 실제로 검찰 수사를 받은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끝머리에 한마디 덧붙이길 잊지 않는다.

"허가받은 골동품상 아니면 거래를 안합니다. 그리고 도난품이라고 확인될 경우 언제든지 아무 조건 없이 주인에게 돌려줍니다. 저는 그냥 돌조각이 좋아서 모을 뿐이에요. "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